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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엘리>(2009)

아쉬가르 파라디

by 로로

[미디엄 쇼트의 비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거리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실 이렇다. 전지전능한 스토리텔러가 정해준 선과 악, 또는 우리편과 적들의 구분선을 따라서 기분 좋게 승리를 만끽하고 나오는 것. 그외에 또 뭐가 있겠는가? 99%의 영화는 다 그렇다.


이에 저항하는 1%의 영화는 대략 모든 등장인물이 다 문제투성이다. 이런 영화는 좋은 영화도 많지만 스트레스 왕창 받는다. 또는 모든 등장인물이 선하고 아름답다. 웰메이드 일본영화에 이런 영화가 종종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나처럼 평범하다. 그런데도 사람들간에 갈등이 발생하고 아픔이 깊어가고 이것을 깔끔하게 풀어내지도 못한다. 즉, 우리의 삶이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 그의 영화는 단 한 편도 버릴 것이 없는 보석같은 8편의 필모그래피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그의 영화 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세일즈맨>에 이어 오늘 4번째로 <어바웃 엘리>를 보았다. 나머지 4편의 영화 중 최신작인 <누구나 아는 비밀>은 어떻하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2006년 이전의 영화 <불꽃놀이> <아름다운 도시> <사막의 춤>은 보기가 쉽지 않을 성 싶다.


파라디 감독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롱쇼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얼굴만 잡아내는 클로즈업은 아예 없다. 화면의 95% 이상이 등장인물의 가슴이나 무릎 위 상반신을 담는 미디엄쇼트이다. 이 미디엄쇼트에 파라디 감독의 철학이 모두 깔려 있다.


오늘 본 <어바웃 엘리>의 도입 화면은 이 영화를 본 사람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볼 때 이 화면은 투표함의 안쪽에서 투표함으로 떨어지는 투표용지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 내용 중 이것을 시사하는 부분이 충분히 등장한다. 누구나 한 표씩 참여하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영화에는 연날리기 장면과 배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꽤나 길게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는데도 전체가 이러한 미디엄쇼트로만 되어 있다. 정말 집요할 정도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거리다. 파라디 감독은 그렇게 말한다.


#어바웃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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