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
[침묵으로 말하기]
지난해 최고의 외국영화라 할 수 있는 <패터슨>을 7번째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 보다 틀어 놓았다. 이제 이 영화는 마치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듯이 그냥 틀어 놓으면 감상이 된다. <패터슨>에 대해서는 책 한권을 쓸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다. 그렇기에 여기저기 주저리주저리 써논 글도 많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압권은 '침묵으로 말하기'다. 이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의 지방사와도 같다. 패터슨에 얽힌 중요한 모든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단 한가지에 대해서만 침묵한다. 미국 노동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이며, 패터슨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1914년 견직노동자파업에 대해서만은 침묵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광주의 지방사를 담은 영화에서 문화인, 예술인, 그리고 온갖 이야기를 들추어내면서 정작 1980년 광주민주항쟁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과 같다.
짐 자무시 감독이 노동운동에 무심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영화에 대한 모든 인터뷰에서 주인공을 Working class bus driver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꼭 견직노동자 파업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영화에는 빠져 있다. 왜 일까?
불행히도 모든 영화평론가들은 자무시의 '침묵으로 말하기'를 깨닫지 못했고 대부분의 관객도 마찬가지다. 이를 깨닫지 못해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고급진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패터슨이 일주일 동안 5번의 출퇴근 그러니까 10번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낡은 붉은 벽돌 건물을 여러 각도로 여러 곳을 보여준다. 이 길을 지나며 패터슨은 시를 머릿속에 구상한다. 이 건물이 8시간노동 쟁취를 위한 패터슨 견직노동자파업의 중심지였던 Paterson Silk Exchange 건물이며 영화속에서도 글자가 반쯤 지워진 상태로 슬쩍 지나간다.
영화는 놀랍도록 집요하게 노동자의 삶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시와 사랑으로 이것을 아름다운 운율로 표현한다. 영화는 그동안 자신이 쓴 시를 모두 잃어버리고 새로 시를 쓰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그 시가 다음과 같다.
The Line
There’s an old song
my grandfather used to sing
that has the question,
“or would you rather be a fish?”
In the same song
is the same question
but with a mule and a pig,
but the one I hear sometimes
in my head is the fish one.
Just that one line.
Would you rather be a fish?
As if the rest of the song
didn’t have to be there.
여기서 fish는 노동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