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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3. 2020

어머니의 실존철학

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까? 대부분의 생물은 죽음을 인지하지도 못하며, 죽음을 인지하는 듯한 고등동물들은 죽음의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은 두려워할지 몰라도 죽음 자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인간만이 유독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온갖 지랄을 떤다. 그 지랄에는 종교가 핵심이기에 인간의 문화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꼴깍 하는 순간에 이르는 과정에 수반되는 공포도 크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니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럼 뭘까? 뜨거운 지옥불에 떨어질까봐? 죽음 직전에 종교적 회심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이것도 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의 판단력은 이미 극도로 불안한 가운데 심약해진 상태이다. 문제는 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지옥불은 그 불안감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럼 딱 하나가 남는다. 존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자아의 멈춤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여기에 "두려움"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적절치 않다. "자아의 상실"이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온갖 종교적 수단을 만들어 낸다. 영혼이란게 있어. 그러니 자아가 상실되는게 아냐, 하고 속삭여 보지만 결국엔 다 부질없는 짓이다. "자아의 상실" 앞에는 절대적 공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럼 이렇게 물어야 한다. '자아'가 뭐길래? 보통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 속해 있는 고유한 그 무엇이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자아는 '타자'를 통해서만 인식되는 것이다. 만약 지구상에 딱 한 명의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그 인간에게는 자아가 없다. 아주 똑똑한 사람도 '인격적 유일신'을 믿지만 만약 진짜 그런 '유일' 신이 존재한다면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신이란 사실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타자가 없이 자아는 형성되지 않는다.


다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돌아가서 그 두려움의 정체를 쉽게 표현하자면, 살아남아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 타자를 통해 자아의 상실이 확인된다. 만약 어느 일순간에 모든 인간이 싸그리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휴머니즘이나 인류애나 이런 건 일단 제쳐두면, 실존적인 차원에서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다. 즉 자아의 상실에 의미를 부여할 타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0년전쯤 그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 핵전쟁 때문인지, 혜성충돌 때문인지 기억에 없다. 어쨋든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와 나누는데, 어머니 왈 "그건 하나도 안 무섭다. 다 죽어버리는데 뭐가 무섭겠나?"


나의 기억 속에 왜 30년전 어머니의 이 한 마디가 생생히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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