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화가를 만들고
칙칙함은 작가를 만든다.
어려서 만난 친구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죽기 얼마전까지 우정을 이어가지만
늘 평행선을 그린다.
골동품이 들어찬 어둑한 파리의 서재에서
'인간 군상'을 파헤치는 졸라는
프랑스 남부의 쨍쨍한 빛과 씨름하는 세잔을 이해하지 못한다.
빛이 눈을 어떻게 현혹시키는가를 그리는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세잔은 공고한 대상이 어떻게 자기를 빛을 통해 드러내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자연을 탐구한 세잔과 인간을 탐구한 졸라는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척 하지만 겉돌뿐이다.
이걸 통상적인 우정의 잣대로만 재보려는 관객은 실망한다.
끊임없이 카메라를 꽉 채우는 액상 프로방스 지방의 쨍쨍한 빛과 씨름하면서 세잔이 인생 말년기에 그린 수십점의 '생 빅투와르 산' 주요 작품이 영화의 엔딩 화면에 차례로 깔리면서 세잔이 구상했던 작품세계가 어떻게 완료되어 이후 20세기 현대회화의 뿌리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비록 영화는 졸라와 세잔의 우정도 애매하게 처리하고 세잔의 예술세계도 답답하게 드러내지만, 19세기 후반, 미술에서의 인상파의 등장과 문학에서의 자연주의의 등장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보면 건질 것이 꽤 많은 영화다.
단, 원제 Cezanne et moi를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것은 욕이 나온다. 졸라는 세잔을 '위대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자연주의 소설가인 그가 20세기에야 활짝 피게 되는 세잔의 미학적 영향력을 이해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제목은 참... 거시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