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와이즈먼
[만행]
다큐멘터리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3시간 26분 짜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개봉을 반기며 와이즈먼의 또 다른 다큐 <내셔널 갤러리>를 찾아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평을 하기 어려운 것은 3시간 동안 그저 와이즈먼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모든 관계자들(관장에서부터 청소원까지, 그리고 관람객까지)의 말과 행동, 깊이와 넓이, 탐색과 사고 앞에서 그저 한없이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통해 와이즈먼 감독과 함께 뉴욕공립도서관에 푹 빠지고 싶은 생각뿐이다.
1만 명도 보지 않을 이런 영화를 수입해서 공급해주는 영화사에 고마운 마음이 한이 없지만, 누군가가 저지른 '만행' 하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셔널 갤러리>의 '한국형' 영화 포스터에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 중 섹시한 몸매만 뽀샵으로 따서 사용한 것에 대해서까지 굳이 뭐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말이다. 포스터의 구도를 맞추기 위해서 미술작품의 좌-우를 훌러덩 뒤집어서 사용하는 것은 거의 만행이라고 본다. 이 포스터를 만들고 검토한 그 누구도 실제로 영화 <내셔널 갤러리>를 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봤다면 미술작품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단 한번도 줌인-줌아웃을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 패닝이나 돌리도 사용하지 않는 와이즈먼 감독의 철학이 듬뿍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의 포스터에 어떻게 미술작품의 좌우를 맘대로 뒤짚어 넣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몸과 마음이 오그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