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안에서 옷들이 저들끼리 비벼댄다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비벼주는 놀랄 것 없는 스스로의 편리한 위안
빨래터로 가야 하는 의무감도 사라진 지 오래고 빨랫감을 두드리는 허기도 없는데
남아도는 시간이 시끄럽다
편리해질수록 유리벽에는 막히는 소리가 팽팽하고
서로가 조심스럽게 조용한 카페 안에서 시간을 물고 늘어지다 보면
“B-67번 손님 주문한 커피 나왔습니다”
이름도 조용하게 사라진다
돌린다 돌아간다
혼자 걷는 시간들이 세탁기 밖에서 돌아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와도 모두 모니터 안에 있다
눈인사도 받기 민망하고 손을 뻗어 악수할 마음이 차단되어 버린 그늘에 앉아
창밖으로 오뉴월 태양 볕을 썬 글라스로 뚫어지게 받아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의 시간에 맞춰 조용히 팽팽하게 앉아 있다가
빨래걸이에 널려있어야 되는 세탁한 옷들이 깜박 생각난다
손으로 꺼내지 않으면 스스로 밖을 나올 수 없는 편리한 위안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