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추파가 재작동된다
네가 눈 밖에 나면
무겁게 십칠 년의 무게를 버티고 있어도 한순간이야
남편의 월급도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리처럼 꼬박 나오고
밖이 전쟁터라는 그이는 집도 전쟁터란 걸 모르는 게 흠이지
다른 버튼의 쓰임새를 생각해 보자
해동이란 기능은 네다섯 번은 실패하지
그래도 버튼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여러 번 눌리면 작동되는 마법이 있어
대화는 안 돼도 너를 다섯 번 누르기 전에 반응이 온다는 것
무엇보다 남편은 듣는 귀가 있다는 거야
내가 남편의 될 것 같은 기능을 잘 찾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그것만 탐구해서 그런 걸 거야
그리고 아침을 안심하며 준비하는 게 행복이야
계란찜은 한 번에 안 돼도 두 번을 누르면 판이 돌아가
딸, 아들 식사 시간에 맞춰 장조림 간장을 진하게 풀어 넣고
들기름으로 쓱쓱 비벼 상에 내놓으면
군말 없이 먹을 때가 많지
젖병 소독, 행주 소독, 스팀 소독은 다 먹통이라도
계란찜, 30초 조리 기능만 되면
널 버릴 수 없어
남편의 월급으로 빠르고 감사하게 쓸 수 있는 기능이
살아있다는 거야
말하는 기능과 소독 기능은 소멸돼도
듣는 귀는 다섯 번 누르기 전에 작동한다는 거야
“오케이”
아직은 레인지가 추파를 보내온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