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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Sep 29. 2024

땅겨 먹는 마라탕

막내는 무지 마라탕이 먹고 싶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호랑이 같았다. 나는 어째서라도 안 먹이려고 했다. 딸과 나의 밀당 작전이 시작된 거다!

“엄마, 마라탕 10월 거 땅겨 먹을래?”

“안돼! 자꾸 그렇게 땅겨 먹으면 약속이 아니지. 원칙을 지켜! 그리고 이번 달에 3번이나 먹었다고.”

“한 번은 내 돈으로 사 먹었잖아!”

딸은 한 달에 한 번 먹는 마라탕을 챙겨 먹고, 현장 학습 갔다가 오는 길에 친구와 사 먹었고, 지난주에 자기 돈으로 사 먹었다. 그리곤 도저히 이틀을 못 견디고 사달라고 한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호랑이처럼 더 달라고 한다. 나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이틀만 버티라고 했는데, 호랑이가 되겠단다.

“곰이 쑥,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고 하잖아, 참는 게 그만큼 중요하단 거야. 너도 참아!”

“엄마, 뭔 소리야! 난 그냥 호랑이가 될래!”

“헐.”


딸은 머리를 굴리더니,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시험 기간이야! 그러니까 마라탕 사줘야 해, 약속했잖아!”

“시험 기간? 네가 공부만 하니? 그리고 시험 기간이 언제부터라고 정해진 건 아니야. 시험을 치는 달이 시험 기간이야!”

“아니야, 엄마. 선생님이 한 달 전부터 공부하는 거랬어! 그러니까 한 달 전부터가 시험 기간이야!”

“너는 선생님 말만 들을래?”

“그럼, 엄마 말을 들어!”


둘은 팽팽하게 대치했고, 나는 선 넘은 말을 하고야 말았다.

“시험 친다고 동네방네 자랑해야겠다. 이렇게 말이야! 10월 며칠에 시험을 쳐서 너무 힘들고, 공부 열심히 하니까 마라탕 사주는 게 맞죠, 동네 사람들! 엄마가 마라탕 안 사줘요!”

“자랑이지! 시험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 앉은자리에서 수학 시험지 25장 풀었다고. 몇 시간 걸린 줄 알아? 얼마나 힘들었는데!”

“공부,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니?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거지.”

“응, 공부 잘해서 내가 돈 잘 벌면, 엄마한테 주고, 도움 되잖아!”

“그건 고마운 말이네!”

나는 의심이 좀 됐지만, 속으로 부모 생각하는 마음에 쪼금 감동했다. 막내는 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 내가 백기를 들 찰나가 됐다.

‘주말인데 나가서 외식시켜 주는 것도 아닌데, 마라탕 한 번 사준들 어떠하리!’

나는 이런 마음이 불쑥 들었다.


'사줘야 해, 말아야 해? 이럴 땐 난처해. 아이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잘 까먹고, 유리한 건 꼭 기억하는 버릇이 있어. 엄마가 잘해주고, 사줬던 다양한 건 기억 못 하고, 못 해주거나 해줘야 하는 건 기가 막히게 기억해서 말할 때가 있다니까. 이번 일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이렇게 딸에게 밀리면 한 달에 한 번 사주는 마라탕 약속이 흐지부지해질 것 같았다. 맵짠 음식이라 속이 안 좋아질 테고….

“알았어! 땅겨줄게. 다음 달에는 한 번 사주는 거다!”

“왜 한 번이야?”

“이번에 땅겨 먹었으니까, 다음 달에는 시험 기간이잖아. 그래서 사주는 거지.”

“알았어, 마라탕! 마라탕탕!”

"엄마보다 마라탕이 좋은 것 같네?"

"어떻게 알았어!"


딸은 더 머리를 굴리지 않고 만족했다. 어차피 사줄 거지만, 서로 밀당 작전으로 시험 기간은 시험 치는 달로 정해지면서 마라탕은 그 기간만 사주게 됐다. 나는 딸이 마라탕을 덜 먹게 하는데 성공, 딸은 당겨 먹게 된 밀당에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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