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통장에 용돈 들어왔어!”
“응, 오늘 넣었어. 넌 용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겠다. 엄만 용돈이 없어.”
“엄만 엄마 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
“뭘 보고?”
“엄마는 오븐도 척 사서 빵을 만들잖아.”
“그게 마음대로야? 너희들 먹이려고 산 거지?”
“아니야, 엄만 취미생활 하려고 산 거야!”
딸은 엄마 마음은 안중에 없고 자기가 느끼는 대로 말할 뿐이다. 난 사 먹는 것보다 건강한 빵과 과자를 가족에게 먹이려고 산 건데….
“너희들 해 먹이려고 산 거지. 날 위해서 산 건 아니라고.”
“맞네! 엄마 취미 생활하려고 산 거네!”
대화하며 서로 다른 생각이다. 난 쉽게 나를 위해서 돈을 쓰지 못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데, 딸은 엄마가 취미생활로 비싼 오븐을 샀다고 한다. 딸은 부러워하는 엄마 마음이 문제라고 했다. 딸의 말을 들어보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불만이 있으면 내가 딸보다 더 돈을 가지고 있어도 적다고 생각되고, 써도 불평하는 마음이 생긴다. 딸은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써서 사고 싶은 것에 비해 절약하며 살 거다. 나는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것이고.
나는 누가 더 부자일지 생각했다. 쓰고 싶은 만큼 딸도 나도 쓰지 못한다면 마음이라도 넉넉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모라는 자격은 주는 사람이라는 걸 더욱 느낀다. 주고도 자식들에게 돌려받던, 받지 않던 바라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너희들보다 어렸을 때 어땠는 데가 통하진 않는다. 내가 부모에게 받은 물질적, 정신적인 사랑이 적었더라도 자녀에게 얘기할 거리가 못 된다는 걸 느낀다. 내가 부모로서 자녀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충분한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가족을 위해 오븐을 샀어. 빵과 과자, 케이크도 만들어 봤고. 일이 취미가 된 거지. 맞아! 막내 말이.’
나를 생각하면 뭔가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가족을 생각하고 딸의 말을 들으면 딸의 말이 100% 맞다는 걸 느꼈다. 이런 마음이면 오븐을 산 것도, 사용하는 것도 기쁨과 감사가 된다. 그리고 딸이 용돈을 받으며 거기에 만족하고 아끼는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딸의 말에서 나의 불평불만과 욕심이 탈탈 털렸다. 마음이 좀 가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