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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니까, 돈 넣어줘!

4월 25일에 있었던 일이다.

"엄마 나 내일 공부하러 카페에 갈 거니까 돈 줘! 친구랑 무인카페에서 공부할 거야."

"친구랑 공부하면 수다 떨고 그럴 텐데, 공부가 되겠니?"

"내가 알아서 해!"

막내는 엄마에게 돈을 맡겨놓은 양 말했다.

"그럼, 내일 카페 가서 연락해, 돈 넣어줄게."


다음날, 밖을 나가려는 막내를 붙잡았다.

"무인카페면 한 잔에 2600~2700원 아냐?"

"응, 그런데 나 오래 있을 거야!"

"오래? 4시간 정도?"

"그 보다 더 있을 거야!"

나는 딸이 여태까지 그 정도로 공부한 걸 본 적이 없다.

"그럼 4시간 후에 음료값 더 넣어줄게. 커피 말고 다른 거 먹고."

"나보고 공부하라는 거야? 공부하겠다는데, 그 정도 커피 값 못줘?"

"커피를 두 잔씩이나 먹을 필요는 없지."

나는 딸에게 다른 차를 사 먹고 두 잔은 많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아차 싶었다. 딸이 커피에 의지하는 것 같고 밤에 또 늦게 자고 아침에 못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됐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할걸....


2시간이 흘렀다. 딸은 무인 카페에서 전화했다.

"오래 있으면 눈치 보여서 한 잔 가지고는 안돼, 커피값 줘!"

"무인카페에서 무슨 눈치가 보여?"

딸은 심리적인 눈치를 보나보다.

"엄만, 딸이 공부하겠다는데 도와주지는 않을망정, 공부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공부하는 게 벼슬 맞다. 막내는 돌림노래를 불렀다. 공부하는 게 상을 받을 정도의 큰 칭찬감이자, 고통인 거다.

"엄마에게 지금 협박하니?"

"엄마가 그러잖아!"

딸은 지지 않는다.

"카페에서 4시간 이상 공부가 될까? 안 되니까, 4시간 지나면 엄마가 커피값 더 넣어준다고."

나도 지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해."

"공부한다고 음료값 달라는데 엄마가 왜 값을 정해?"

"주는 사람이 정하지, 받는 사람이 정하니? 엄마는 판단해서 주는 거야?"

막내는 이해를 못 했다. 딸은 구시렁구시렁거리다가 반응이 없자, "공부하니까 돈 줘!"라는 돌림노래가 '뚝' 끊겼다.


20분이 흘렀다, 다급한 문자 같았다.

"엄마, 엄마, 엄마!"

"나는 말을 아꼈다."

커피 한잔 값만 넣어줬고, 핸드폰에서 눈을 뗐다.

어떻게 하면 이런 똑같은 레퍼토리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밀당하며 "공부하니까, 돈 넣어줘~"라는 돌림노래에 맞춰 막내의 토스 계좌에 돈을 붙인다.






8월 15일, 어제는 점심 먹고 수학 숙제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점심을 늦게 차려주는 바람에 2시부터 숙제를 하겠다고 했다. 막내가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내게 맡기려고 하다가 친구 생각이 났는지, 도로 가져가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친구와 무인 카페 가서 공부하기로 했어."

딸은 2시 반에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더니 나가려고 한다.

"지금 가면 3시가 넘을 텐데... 그냥 집에서 혼자 하면 되잖아!"

"아냐, 친구랑 숙제하면 더 잘 돼. 공부 잘하는 친구랑 하니까."

"알았어!"

그래도 공부하겠다고 나간 딸의 의지가 예뻐 보였다.


오후 5시 반쯤에 딸의 메시지가 왔다.

"엄마, 나 정어리 샀어."

"정어리를 왜 사?"



아홉 시가 넘어서 온 딸이 정어리 사연을 얘기했다. 딸의 생일 선물로 친구가 준 것이고 생일이 지났지만 만난 김에 준 거였다. 엄마가 깜박 속아주길 바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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