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간소한 생일상

저녁은 점심에 남은 밥에 마라탕까지

생일상으로 마라탕 먹겠다던 막내가, 자기가 한 말을 잊었나 보다. 전화 안 온 친구에 서운해하는데 쏠렸다.

나는 점심으로 돼지불고기에 된장찌개 먹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생일? 아, 미역국이 빠졌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부랴부랴 시금치나물과 감자볶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반찬 주문을 했다. 미역국, 오이무침...


30분 안에 주문한 반찬이 왔고, 나는 그걸 주방으로 가져와 냄비에 미역국을 넣어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나는 배달온 반찬이 따뜻할 거라 생각했는데 모든 반찬이 냉장고에서 갓 나온 것처럼 찼다.

아들이 막내에게 물어봐서 고른 생크림 케이크와 배달된 반찬과 집 반찬으로 간소하고 편하게 점심 생일상을 차렸다.

예전 내 생일날에 내 손으로 미역국 끓이는 게 속상해서 대충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돌아오는 생일에는 막내의 생일처럼 배달해 먹어야겠다. 이런 방법도 있었는데, 그날의 우울이 날아간다~~~

고봉으로 밥을 얹은 건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많이 퍼준 밥이긴 했다. 입이 짧은 막내가 밥을 반만 먹고 남겼다.

나는 밥을 남기면 버리게 된다고 저녁으로 먹으라고 했다. 딸은 알겠다고 하고선 저녁을 먹지 않고 오레오 과자와 우유로 때우고 6시 반쯤에 학원 보충받으러 나갔다.

"너 다녀와서 먹어야 돼, 아니면 내일 아침밥이다!"

이렇게 남겨서 버린 적이 몇 번 있었기에 나는 현관을 나서는 딸에게 말했다.

"알았어, 다녀와서 먹을게."


학원에서 8시 반쯤에 온 딸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점심때 먹은 밥을 차려준다고 했는데, 막내가 말을 바꿨다.

"나, 마라탕 먹을래!"

"너 점심에 남긴 밥 먹기로 했잖아!"

"엄마가 생일날 마라탕 사주기로 했잖아!"

나는 마라탕을 안 사줄 수도 없고, 남은 밥을 버리는 게 습관이 될까 봐 걱정됐다. 협상이다!

"점심때 남긴 밥 먹으면 마라탕 사줄게."

"알았어."

막내는 협상에 순순히 따랐다.

나는 딸이 마음이 변할까 봐, 점심때 남긴 밥과 국을 바로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에 차려놓았다.

딸이 개눈 감추듯이 먹었다.

"너, 밥통에 밥 넣은 거 아니지?"

나는 밥통을 확인하고 식탁을 확인했다.

"아니야, 국이 짜서 국 하고만 먹었어."

밥과 국은 먹은 흔적이 있는데, 반찬은 그대로였다. 딸의 생일이라 밥을 안 먹어도 마라탕을 사달라고 하면 사줄 생각이었다.

"알겠어, 마라탕 주문해!"

내 핸드폰을 받아 든 막내는 행복한 표정으로 주문했다.

역시, 마라탕 좋아하는 귀신이 붙은 막내는 생일에도 마라탕이다!


30분 후에 마라탕이 도착했다.

"막내야, 마라탕 왔어. 마라탕 먹어!"

막내는 거실로 나와 내가 전해주는 마라탕을 받으며 말했다.

"생명수야!"

정말 마라탕 귀신이 붙은 게 맞는가 보다.

"생명수? 어째서 마라탕이 생명수야! 정신이 번쩍 뜨이게 하거나 무슨 이유가 있어?"

"몰라!"

"너 그냥 한 말이지?"

"응."

막내의 입에서 불쑥 생명수란 말이 나온 걸 보면 제 입으로 한 말이 아니고 마라탕 귀신의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ㅎㅎㅎ




keyword
이전 12화공부하니까, 돈 넣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