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보다 낫기
큰딸은 날을 새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잤다. 저녁 6시쯤에 일어난 딸은 평소보다 늦게 자고 4~5시간 늦게 일어난 것이다. 방학이라 친구들과 게임하느라 늦어서 이해하고 넘겼다.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딸에게 나는 카레가 있으니 밥을 차려먹으라고 했다.
"저녁이 카레야?"
"아니, 점심인데 아직 저녁 메뉴 생각 안 했어."
나는 큰딸이 카레를 차려서 먹을 줄 알고 기다렸다. 30분째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딸에게 물었다.
"카레가 싫은 거야?"
"아니, 조금 있으면 엄마가 밥 차려 줄텐데, 시간이 애매하잖아!"
나는 딸이 먼저 저녁 먹길 바라고 딸은 엄마가 차려줬으면 했다. 나는 좀 타는 속을 가라앉히려 체면을 걸었다.
'그래, 엄마를 믿으니까 얘가 기다리는 거지, 내가 없으면 혼자서 라면도 끓여 먹고 챙길 텐데...' 하고 된장찌개를 끓이려 주방으로 갔다.
된장찌개에 감자가 익길 기다리며 나는 다시 거실로 와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브런치 글을 썼다. 양심이 찔렸다. 그 시간에 반찬 한 개를 더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글을 쓰고 있어서였다. 나는 딸에게 물었다.
"배 많이 고프니? 식사 빨리 차려줄까?"
"아니, 아침 먹어서 괜찮아. 엄마 하고 싶은 거 해."
나는 딸에게 미안했다. 딸이 자기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기억을 더듬으니 딸은 날을 새고 아침 9시 반쯤 밥을 먹고 잠이 들었던 거다. 그러니까 점심만 안 먹은 것인데, 나는 그걸 잊고 불만이 컸다.
하루 종일 자고 저녁에 일어나 밥 먹는다고...
나는 착각과 '큰딸이 차려 먹겠지!' 하고 내 생각만 한 사이, 딸은 '엄마가 차려주겠지, 좀 더 기다리자!'라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지 않고 저녁을 차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딸이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더 해주면, 딸도 더 잘하려고 할 거야. 엄마 마음을 알고 자기가 눈치껏 차려 먹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파무침을 하고, 반찬을 꺼내 식탁에 놓고, 삼겹살을 구웠다.
"딸아, 식탁매트 씻어놨는데 닦아줄래?"
딸은 핑계 대지 않고 와서 식탁매트를 닦았다. 나는 4개 중 3개를 줬는데 남동생과 먹는 걸 알고 두 개만 닦았다. 순간, 다 닦지 않는 게 나는 서운했지만 그 마음을 가볍게 생각하려고 나머지 두 개의 식탁매트를 닦았다.
기존에 레이스 식탁보를 버리고 위에 깐 PVC 테이블도 얘들이 지저분하다고 해서 버렸다. 새로 산 식탁보만 깔아서 개인용 식탁매트를 4개 샀던 것이다. 딸에게 이것을 닦으라고 하면 함께 식사를 차리는 게 되고, 집안일을 자연스럽게 더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딸에게 숟가락과 젓가락도 놓아달라고 했다.
"숟가락만 놓았네?"
나는 웃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잠깐만요, 할 게 있어서요."
딸은 소파로 돌아가 다시 핸드폰을 봤다. 나는 딸이 한 말을 믿고 기다렸다. 5분 정도 핸드폰을 보고 온 딸이 젓가락을 챙겨서 식탁매트에 가지런히 놓았다.
"딸아, 아들아, 밥 먹자!"
나는 구운 삼겹살을 식탁 중앙에 놓고, 자녀들은 서로 농담을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나는 아이들 삼시세끼 차려주어야 하는 힘겨운 마음에서 당연한 일로 여기는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바뀐 걸 느꼈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행동도 빨라지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