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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야, 잔치국수야?

막내의 선택

"콩국수야, 잔치국수야?"

어제 아침에 콩물을 로켓배송으로 받았다. 좀 할인된 걸 사서 그런지 유통기한이 짧았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점심때 먹으려고 했는데, 어제 점심은 짬뽕 순두부를 해 먹어서 저녁으로 꼭 콩국수를 먹으려고 했다. 7시쯤, 여름방학이라 막내는 학원에서 일찍 왔다.

“콩국수 해줄까?”

“싫어, 난 멸치국수!”

“엥, 여름에 멸치국수?”

나는 막내가 며칠 전부터 멸치국수가 먹고 싶다고 한 걸 알았지만, 한 여름에 멸치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난, 멸치국수 아니면 안 먹어!”

“장조림에 계란찜도 있고, 참치마요덮밥도 해줄 수 있어.”

“멸치국수 아니면 안 먹는데도!”

나는 하는 수 없이 육수를 끓여 좀 쉬운 방법으로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예전에는 애호박볶음과 당근볶음, 계란지단을 만들어 썰어 놓고, 김치도 설탕과 참기름을 버무려서 국수 위에 올려서 대령했었다. 양념간장도 싱거우면 넣으라고 만들어 놓았었다.

이번에는 육수를 만들 때 채소를 몽땅 넣어 간을 짭조름하게 맞춰서 국수만 삶아 그 위에 부으면 끝. 지단만 따로 만들고 파만 송송 썰어서 잔치국수 위에 뿌리고 김치와 함께 식탁에 놓았다.

“막내야, 국수 먹어. 막내야?”

계속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서 막내 방으로 들어갔다. 딸은 불을 끄고 자려는 참이었다.

“잔치국수 끓여달라며?”

“나, 지금 졸려서 못 먹어. 자고 일어나서 먹을게.”

“그러면 미리 얘기하지…. 알았어.”


나는 잔치국수가 퉁퉁 불을까 봐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잔치국수를 먹으며 카레라이스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밥에 어제 남은 카레를 부어 식탁 위에 놓았다.

아들은 맛있게 먹고 자기 방으로 가고, 설거지를 하는데 일찍 잠에서 깬 막내가 아들과 바 턴 터치 하듯 의자에 앉으며 잔치국수를 달라고 했다. 국숫집에서 일하는 점원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끼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과정을 잊고 잔치국수를 막내 코 앞에 내려놓았다. 막내는 며칠간 노래 부르던 잔치국수를 ‘후루룩’ 재빨리 먹었다.

어제 먹으려고 했던 콩국수 계획은 날아갔지만, 막내가 만족했으면 됐다.


“오늘 점심으로 콩국수 싫지?”

“응.”

“소불고기에 된장찌개 먹을래? 아님, 장조림에 계란찜? 장조림에 계란찜은 바로 줄 수 있어.”

메뉴를 불러주면 밥을 안 먹는 딸을 위해 식탁에 앉을 때까지 말 안 하는 방법을 썼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요즘엔 안 통하는 방법이다. 이젠 경우의 수다!

“그럼, 장조림에 계란찜.”

막내는 아침으로 바나나에 우유 먹고 배가 고팠는지, 12시가 안 됐는데 점심을 찾는다.

‘오늘 점심도 콩국수는 물 건너간 건가?’

'원 플러스 원으로 산 콩물이 아까워 어쩌지? 냉동실에 넣어 둘까?'


밥 먹으려고 나온 막내가 사춘기 딸답게 실실 웃는다.

"뭐 좋은 일 있어?"

"기쁜 일이 없어서 웃는 거야."

"너 F지!"

"난 T!"

"아니야, 엄마도 F야!"

쭉― T였는데, 막내가 어디서 MBTI 검사하는 앱을 알아냈는지, 검사해 주는 곳도 모른 채 검사를 받아봤었다. 그때는 또 F로 나왔다. 나는 T도 됐다가, F도 되나 보다. 뭐든 중간이면 좋은 건가?

막내가 좋은 기분을 내 발바닥을 치며 표시했다.

“너, 엄마 발바닥 때리고 있어서 기쁜 거 아니야?”

“T고 F고 엄만, 아파!”

막내는 깔깔대며 식탁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막내야, 우리 협상하자.”

“뭘?”

“콩물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야. 우리 저녁에는 꼭 먹자, 응?”

“그래, 그러던지.”


오늘 저녁에는 콩국수를 과연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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