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의 일로 아이들과 갈등 중이었다. 재수 중인 아들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와서 11시가 되면 집안이 조용했으면 싶은 거고, 막내는 11시가 되면 공부를 해야 된다고 불을 켜고 거실을 들락날락하거나 화장실 소리가 나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모두 자기의 생활패턴이 중요한 것이다.
“너 혼자 사니? 좀 조용히 하라고, 나 자야 돼! 내일 일찍 일어나서 독서실 가야 된다고!”
“엄마, 막내와 이 시간에 꼭 싸워야겠어요? 나 자야 된다고요!”
아들이 하는 말이다. 11시, 마음의 종이 울리면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하길 바라는 것이다.
막내와 나는 아들 눈치를 보면서, 아니 나만 눈치를 본다는 말이 맞겠다. 막내는 잠자는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며 나를 물고 늘어지며 협상 중이었다. 특히 올해 치열한 협상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11시 넘어 특히 12시쯤에 막내와 큰소리가 오갔다.
“엄마, 핸드폰 걷어가는 거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알아서 공부한다고요. 난, 충분히 놀아야 스트레스가 풀려요!”
막내는 중학교 때부터 영·수학원을 보냈는데, 공부하는 게 힘든지, 늘 놀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핸드폰 사용을 조절하는데 실패한 나는, 세 아이 모두 핸드폰과의 전쟁으로 힘들었었다. 나는 혼자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치거나 품어주는 두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럴 때 남편이 강력하게 아이들을 훈육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위로 언니와 오빠의 일은 지나간 일이다. 나는 아이들 공부에 대한 교육만큼은 남편에게 자신이 없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네게 관심이 없었니?”
언제, 아들에게 한 말이다.
“아니요, 관심이 너무 많았어요.”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심을 줘야 하는 데는 부족했고, 관심을 덜 줘야 하는 데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미안해.”
“....”
아들은 말이 없었지만, 내 말뜻을 아는 듯했다. 나 스스로 반성했던 시간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보다 왜 하지 않는지에 더 관심이 컸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더 해주고, 함께 몸으로 놀아주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스킨십으로 사랑을 자주 표현해 주고.... 부족함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는 학원에 가는 날이던, 안 가는 날이던 11시까지 핸드폰을 자유롭게 쓰다가 11시가 되면 반납하도록 서로 협상한 상태였는데, 그 시간이 되면 자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협상을 이용해 딸은 11시까지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던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놀고, 11시부터 공부하는 버릇이 생긴 거다. 하지만 그때부터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쉽지 않았다. 막내는 공부를 조금 해놓고 잠이 들거나 새벽 4~5시까지 안 자게 돼서, 학교 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학원 숙제를 안 해가서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일이 생겼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라는 말은 간섭하지 말라는 말 밖에는 안 들렸다. 이 말은 나와 다툼의 불씨가 됐다.
딸과 밤에 가끔 다투는 걸 아들은 맨날 다툰다며 힘들어했다. 나는 딸에게 다음 날 서로 차분해진 마음으로 낮에 얘기 나누자고 하면, 딸은 단판을 지어야 한다며 나를 앉혀놓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길 좋아했다. 그럴 때면 아들은 매우 불편하고 힘들어했다. 딸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핸드폰을 반납하는 시간을 풀어달라고 했다. 필요가 없는 규칙을 왜 세우냐는 것과 그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학원 선생님이 공부할 때는 절대 핸드폰이 도움이 안 되고, 11시부터 공부하는 습관 때문에 학원선생님에게 혼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였다. 중간에서 아들은 중재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또 아들이 보고 듣는 앞에서 새로운 협상이 시작됐다.
미리 딸이 그날 숙제를 해놓으면 핸드폰 반납시간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걸 악용한 막내가 공부나 숙제를 할 때도 있지만 안 할 때가 더 많고, 핸드폰 사용시간이 안 정해지다 보니 새벽 5시까지 잠을 안 자고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나는 새벽 2시까지는 무조건 자야 한다고 딸에게 말했고, 딸은 약속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들도 덩달아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며 호소했다.
나는 딸과 다시 밤에 협상을 해야 했다. 나의 가장 큰 불만은 “부모는 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딸은 말이 바뀌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지키기 힘들면 다시 협상을 하자고 하거나, 내가 딸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면 딸은 엄마의 일방적인 약속이라고 했다.” 그게 갈등의 근원이 됐다.
딸은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건지, 친구로 생각하는 건지, 동생으로 생각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12일에 크게 딸과 부딪혔다. 이 날도 아들이 자려다 말고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 오늘은 숙제 안 했으니까 11시에 핸드폰 반납해야 돼!”
딸은 내 말을 알아듣고 식탁에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올려놓았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는지 자기 방에서 나와 핸드폰을 가져가겠다며 큰소리쳤다.
“엄마의 일방적인 약속이야, 내가 들을 필요 없어, 핸드폰 줘! 억울하네!”
“주말에는 12시까지 볼 수 있지만, 주중에는 11시야, 오빠 일찍 자야 돼!”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억울하다고!”
“무슨 상관? 넌 너 밖에 모르냐!”
아들도 화가 나서 동생에게 화를 쏟아냈다. 집안이 화의 물결로 난장판이 됐다. 나는 아들을 말렸고, 좀 차분해진 아들이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고선 동생과 내가 갈등이 생긴 지점에 대해서 듣길 원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나의 잘못을 알아버렸다.
“엄마, 약속 변경했잖아요! 12시까지로 요. 미리 숙제해 놓으면 12시까지 핸드폰을 쓸 수 있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새벽 2시까지, 일요일은 평일과 같고요.”
아들이 정확하게 짚었다.
“맞네, 내가 그걸 까먹고 딸에게 예전 약속으로 우겼어. 난, 딸이 늘 고집 피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동생이 억울해한 거예요.”
“난, 밤에는 이런 얘기하기 싫어서 피하고 싶었어. 다음날 낮에 차분하게 얘기하면 좋잖아! 하지만 막내와 한 약속을 적어놓지 않는 게 내 잘못이야. 막내는 미리 공부하지 않고 핸드폰을 가져가는 데만 급급한 것도 있고. 둘 다 잘못했어.”
딸은 문을 잠그고 불을 끈 상태였다. 나는 딸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말이 늘 맞지 않은데, 부모라고 무조건 들으라고 한 말이 되었다. 딸의 말을 더 들어보려고 안 하고.
“네, 동생이 얘기하려고 하면 대구 하지 말고, 그냥 밤이라도 들어주세요.”
“그래, 힘들지만 엄마도 노력해 볼게.”
나는 다음날 막내의 기분이 좀 나아졌을 때 사과를 했다. 막내도 약속을 까먹고 있었고 미리 숙제를 안 해놓은 게 미안했는지, 밤에 대화 나누고 싶어도 참고 낮에 하겠다고 했다. 딸의 큰 발전이었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엄마가 들어줄 때까지 얘기하는 딸의 통 큰 배려였다.
“되도록 대화나 협상할 일이 있으면 낮에 얘기하고, 숙제는 미리 해놓는 거 알지?”
나는 딸이 까먹지 않도록 다시 얘기했다.
“알겠어.”
이렇게 해서 딸과의 갈등은 희망의 레퍼토리로 바뀌었다. 또 말이 바뀔지 모르지만 난 딸을 먼저 믿는다.
이런 일도 윤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엄마 때나, 그 이전부터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비슷한 일로 생긴 갈등.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레퍼토리!
그날은 희망이 보였고, 또 다른 일의 윤회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때론 조용히 지나가면 좋겠지만, 술술 잘 풀리면 좋겠지만, 때론 이렇게 부딪혀야만 알 때도 있다. 그래서 갈등이 희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