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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과 전을 부치며

큰딸과 어제 전을 부쳤다. 딸은 꿈에서 자기가 전을 부치고 있었다며 신기해했는데, 마침 올해는 간소하게 산적과 동그랑땡만 하기로 했다. 꿈 때문인지 딸은 투정 없이 전을 부쳤다. 아니, 오히려 전 부치는 걸 즐기는 듯했고, 내가 시키는 대로 곧잘 따라줬다.

재수생 아들은 점심을 먹고 독서실로 갔다.

“독서실 갈래? 연근이 볼래?”
물으니 아들은 독서실을 택했다.

막내딸은 친구와 카페에서 공부하겠다며 나갔다. 결국 남편의 생일상 겸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큰딸과 나의 몫이 되었다. 평소엔 잘 가지도 않는 카페를 핑계 삼아 내빼려는 막내의 속 샘이었다.

“엄마가 공부하러 카페 가라며?”
“아니, 오늘 가라는 건 아니지!”

막내딸은 그렇게 헐레벌떡 나가버렸다.


전기 그릴에 기름을 두르고, “전 뒤집어라”, “산적 꼬지에 붙은 채소에 계란물 묻혀라” 하고 시키면 딸은 재미난 놀이처럼 곧잘 해냈다. 설거지도 예전에는 미적대며 겨우 하곤 했는데, 요즘은 부탁하면 잘 들어줄 때가 많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설거지는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해 다투기도 했는데, 이제는 명절 음식도 함께 하고, 설거지와 방 청소도 함께하는 딸이다. 슬슬 손빨래와 세탁기 사용법도 알려줘야지. 독립하더라도 혼자 잘 살 수 있고, 결혼을 하더라도 지혜롭게 살림할 수 있도록. 성인이 된 딸과 함께하는 지금이 그 연습기간이 아닐까 싶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고양이 연근이는 독방에 가두려다 거실에 두기로 하고, 전을 부칠 때 가까이 오면 막기로 큰딸과 약속했다. 그런데 연근이는 영리하게도 전기 그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더니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열기가 느껴졌던 걸까. 멀찍이 캣타워로 올라가서는 우리가 전을 부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창밖을 한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전을 다 부치고 치울 때까지도 연근이는 캣타워 꼭대기 동그란 방석에 앉아 무료함을 달랬다.

동그랑땡과 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고소한 전내음이 창밖으로 퍼져나가도 연근이는 끄떡하지 않았다. 어제는 연근이와, 큰딸과, 내가 한마음이 되어 전을 완성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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