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떼었다 붙인 이름표
9월 12일.
학교 단합대회 통신문에 사인한 것에 책임을 지라니!
나는 막내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없었다.
금요일은 수학학원에 가는 날인데, 월요일과 수요일에도 빠졌었다.
'저도 염치가 있으면 가야지!'
지난주 통신문에 사인해 주면서 학원에 빠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프다고 빠지고, 병원 간다고 빠지고, 학원 수업보다 핑계가 더 중요했다.
병원은 피검사 결과만 들으면 되니, 주말에 가거나 전화로 물어봐도 될 일이었다.
공부할 때는 아프고 놀 때는 멀쩡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중2병이 딸의 뇌를 강하게 지배한 뒤부터 일 것이다. 딸은 몸마음이 아팠다.
'친구 때문인가, 집안 환경? 나의 잔소리?...'
셀 수 없는 의문이 휘몰아치는 동안, 딸은 거식증과 비슷할 정도로 밥을 안 먹고 결국엔 어지럼증을 자주 호소해 피검사도 받았다. 딸은 스스로 저혈압이 있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 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주민자치회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올 12월까지 근무하려고 했는데, 9월 주민총회를 마무리하고 10월부터는 다시 전업 주부로 돌아간다. 남편은 자식이 더 중요하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막내는 엄마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도 그러면서..'라고 하면, 서로 갈등만 되고 돌파구가 없다.
또 내게 강력한 미션이 주어졌다. 막내 위로 언니, 오빠를 키울 때도 사춘기 때 힘에 부쳤는데, 막내도 마찬가지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때가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주홍글씨 같아서 버릴 수가 없다. 다시 힘을 내서 딸과 마주했다. 나보다 아픈 딸의 사춘기를 잘 넘어가게 도와줘야 한다!
"수학 선생님의 전화가 왔어. 단합대회 안 가고 학원 오기로 했다고. 어서 학원 다녀와!"
"이번만, 엄마, 친구와 약속했어!"
"안 돼, 선생님께 민폐야!"
"엄마가 사인해 줬잖아, 책임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수학선생님과 통화 후 딸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내가 선생님이 전화 주면 딸이 학원에 갈 것 같다고 선생님에게 사정했는데, 딸은 전화를 받고도 안 간다고 했다.
"지금 친구들과 놀고 있다고, 안돼, 못가!"
하는 수 없이 토요일에 보충하기로 수학선생님에게 부탁드리고 이번 일이 수습이 됐지만, 나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딸은 단합대회가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있었다. 영어과외 선생님 문자를 받고 나는 화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님, 학생이 요즘 숙제를 까먹고 안 해오네요. 충분히 숙제 범위를 알려줬는데 매 번 물어보고요...."
딸과 여러 번 이런 일로 갈등이 있었는데 , 딸은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는 식으로 넘어갔었다.
"엄마 돈! 교통비 없어."
"단합대회하고 바로 집에 온 다며? 교통비가 왜 들어? 집이 코앞인데, 지금 와!"
"10시까지 갈게, 나 노래방에 있어. 돈 넣어줘!"
나는 전화를 끊었다.
딸은 10시 1분 전에 들어와 반려묘인 연근이에게 약을 먹였냐고 물었다. 나는 대구를 안 했고, 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만 봤다. 중성화 수술로 목에 깔때기를 둘러 불편해 보이는 연근이는 딸 옆에 앉아있었다.
나는 주방에서 막내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소용없는 잔소리란 걸 느끼고는 입을 문고리처럼 닫았다. 나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아침도 안 먹고 갔고, 내가 돈도 주지 않아 저녁도 안 먹었을텐테... 저녁 먹으라고 말할까?'
나는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끄집고 나왔다. 미운 마음도 잠시 정지된 느낌이었다. 나는 딸 방으로 갔다.
"연근이 약 먹였어."
딸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저녁 안 먹었지?"
"응."
"차려놓을게, 나와."
딸 방에 들어가 밥 먹으라고 말하기까지 한 시간이 필요했다.
미운 마음이 가라앉고 사랑이 깃들기까지, 벗어둔 이름표를 다시 가슴에 달기까지.
엄마라는 이름표는 왜 이렇게 끈끈하고 떨어지지 않는 사랑의 접착력이 있을까?
막내는 밤 11시에 늦었지만 끈끈한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