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깨기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개에게 신발도 뜯기고, 치마도 물린 경험이 있어서 트라우마로 남았다.
개 짖는 소리는 정말 무섭고 이빨을 드러내면 마음은 벌써 도망간다.
어릴 때 기억은 골목을 지나치면 주택 철창문에 "개조심" 푯말이 붙어 있고 위험한 소리가 울려 퍼졌던 것 같다. 문틈 사이로 개를 볼라치면 쇠 목줄에 걸린 개가 거품을 물고 날 쳐다보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동물을 키우는 건 꺼려졌다.
막내딸이 재작년인가 개에서 고양이 키우고 싶다는 돌림노래로 바뀐 후 마음이 살짝 흔들렸었는데도 미뤘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큰맘 먹고 8월부터 키우게 되었는데, 연근이를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오히려 배우는 것 같다.
"개조심"이란 내 마음에 상처와 꺼려짐의 푯말이 다른 동물에게도 전이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연근이가 사냥놀이를 하자고 앞발로 내 손을 칠 때 움찔 놀랐고, 이불을 덮은 채 소파에 누워있으면 달달 떠는 발을 사냥감으로 착각해 덤벼들기도 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불을 잽싸게 걷어서 엄마임을 상기시켜 주고 안된다고 하며 발을 오므렸다.
연근이를 쓰다듬다가 팔도 사냥감인줄 알고 물려고 할 때는 "아니야, 안 돼."라고 하며 팔을 뒤춤에 감췄다. 그리고 나도 고양이처럼 유심히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연근이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고양이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또렷이 쳐다보던 걸 천천히 깜박거리며 연근이를 보았다.
안심이 됐는지, 연근이 눈빛도 편해 보였다.
"사랑해!"
라는 눈빛을 연근이가 모를 리 없으니.
혹시 내가 가만 서 있을 때 다리를 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다가도, '그런 마음을 갖지 말아야지!' 하며 신경 쓰고 있다. 이 마음은 무거운 추가 깃털처럼 가볍게 변하는 마법처럼 연근이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동물이 이상 행동을 할 거라고 걱정하기보다는, 동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그 특성에 맞게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고양이 연근이를 보며 "개조심" 푯말처럼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동물을 이해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막내가 연근이 밥을 잘 챙겨주지 못할 때 그릇에 담뿍 사료를 넣어주면 어김없이 와서 제 코로 내 다리를 비비는 연근이. 어쩔 때 보면 세 자녀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표현은 달라도 사랑은 전해지고 둘째 아들처럼 미덥다.
꼬리를 세우고 당당하고 폼나게 걷는 연근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