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없이 자유로운 사람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가능성은 누군가 대신 펼쳐 주는 날개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2월 초, 내 생일 전날에 두 지인이 와서 생일 축하를 해주셨다. 한 분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손을 씻기 전에 꼭 하는 행동이 있었다. 알코올소독제로 손을 닦는 습관이었다. 그분의 그런 점을 알기 때문에 나는 소독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놓고 머릿속에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해 두었다.
"저, 혹시 소독제 있을까요?"
"여기요!"
그분의 습관은 안 바뀌어도 될까? 소독제가 없는 장소에 가면 어떨까?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요즘 막내와 갈등이 깊었다. 딸이 미리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영어학원에 적응이 안 돼서 과외를 받았었는데, 딸이 과외의 단점을 알고 다시 바꾼 학원에서도 적응이 안 됐다. 과외는 카페에서 받다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다 보니 숙제를 더 안 하게 됐다.
"60개 단어를 어떻게 외워! 난 못해!"
이 이유 때문이었다. 학원에 딸의 상황을 말했더니, 원장선생님이 단어 외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정규수업 대신에 1시간 반 가량을 단어를 외우고 왔다.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더니 딸이 연달아 세 번을 빠졌다. 열이 나서, 집에 손님이 와서 등 내게 의논도 없이 학원에 연락하고 빠진 사건이었다.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본인이 알아보고 선택한 학원을 자기 기준에 안 맞다고 안 가는 것에 화가 났다.
"영어학원에 다니지 말고, 드럼이나 요리나 너 배우고 싶은 학원에 다녀. 중고등학교를 힘들게 보내지 말고!"
"싫어, 나, 배우고 싶은 게 없어!"
"그럼 어쩌라는 거야!"
"친구 *은이도 다니는 학원이야. 거긴 단어 20개 외우면 된데."
"그 점이 좋은 거야?"
"나, 천천히 공부할래. 내 수준에 맞게 따라가고 싶어. "
"알겠어. 그 학원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녀."
"응."
딸은 또 영어학원을 바꾸게 되었다. 학원에 보내면 알아서 공부할 거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지만, 그래도 딸을 믿고 맞춰줬는데 상처를 받았다. 요즘은 그 마음마저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따라가려고 하는, 딸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의미를 두고 감사하려고 한다.
얼마 전 딸과 청양 얼음분수축제에 갔었는데, 딸의 다른 점을 보았던 여행이었다.
여행사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몇 군데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딸은 컨디션 난조로 내내 버스에만 있어서 나도 여행 내내 기분이 마냥 좋지 못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 딸은 투덜대며 눈에 렌즈를 넣으려고 했다.
"그게 가능해?"
"엄마, 조용히 해. 나, 렌즈 끼고 있는 거 몰라. 나 지금 예민하다고. 건드리지 마!"
나는 곁눈질하며 보고 있는데, 딸은 "엄마 때문에 렌즈를 못 끼고 와서 내가 이러고 있다."는 둥 불평을 하면서도 렌즈 끼는 걸 멈추지 않았다.
'네가 깨워도 늦게 일어난 거야.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렌즈 끼는 딸은 아마 세상에서 드물 거다.'라고 생각하며 숨죽이며 힐끔 보고 있었다.
"다 꼈어."
나는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20분 만에 딸의 두 눈에 렌즈가 끼어 있었다. 마술 같았다. 나라면 절대 그런 행동은 안 할 것 같은데, 불가능이 가능하게 보인 몇 안 되는 순간을 보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가능성을 이런 장면에서 목격하다니.
딸이 60개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하는 마음 때문에 영어학원을 포기했지만, 20개 단어는 외울 수 있는 마음이었다.
"사실, 나 60개 단어, 외워갈 수 있어. 싫어서 그러지."
딸이 그제 한 말을 떠올려본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거다. 나라면 고속버스 타면서 렌즈 끼는 일이 더 어렵고 불가능한데, 딸과 다른 것이다. 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
지인의 행동도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존중한다, 딸도 그렇다. 지인도 어떤 계기로 손세정제 없이 생활하는 게 어려워졌을 것 같다. 딸도 60개의 단어를 외워서 가는 게 엄두가 안 난다. 사실 나도 그런 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먹었던 음식은 안 먹는다.
아들은 "뭐 어때! 동생이 먹은 건데." 하고 먹는다. 요즘은 막내가 먹다 남긴 마라탕을 끓여서 먹긴 한다. 의식하며 하는 행동들이 나에게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면 더 나은 방향의 가능성의 날개를 활짝 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하며 생각과 행동할 때 의식하는 것 중에 바꾸면 좋은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초등학교 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오래됐다. 걸리는 마음이 없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딸이 "엄마가 바뀌어야 내가 바뀌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나는 그제 딸이 학원 가기 두 시간 전에 안 가겠다고 해서 대화를 나누고 학원에 미안하지만 여차여차해서 못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내가 이번에 도움 많이 좋지?"
딸은 대답은 안 했지만 부정도 안 했다. 나는 한 발짝 더 딸에 다가갈 것이다. 딸이 어제는 며칠째 정리 안 하던 책상을 청소하고, 숙제도 해서 수학학원에 갔다.
딸에게 말해야 될까, 손도 못 대게 하는 책상을 치워줄까 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는데, 해소된 것 같다. 딸에게 맞춰주면서도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얼음분수 사진에 상상의 모녀를 합성한 AI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