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얼마 전 딸이 눈다래끼가 나서 병원에 다녀왔다. 진료비와 약값 외에 편의점에서 쓴 금액이 휴대폰 알림에 찍혔다.
“뭘 쓴 거야? 요즘 내 카드를 가져가면 말도 안 하고 쓰더라고.”
나는 거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말했다.
“자기 용돈으로 써야지. 이것저것 엄마 카드로 쓰고, 아까운 줄 모른다니까?”
“그래, 스스로 벌어봐야 돈이 귀한 줄 알 거야.”
아들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랬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어. 아르바이트하면서 달라진 거지.’
생각해 보니 놀라운 점도 있었다. 아들이 입시 때문에 연기학원에 다닐 때 학원비 외에도 꽤 많은 돈을 썼다. 학원 친구들은 잘 꾸미고 다닌다며 외모에 신경을 썼고, 연기에 도움이 된다며 좋은 뮤지컬이나 영화도 자주 봐야 한다고 했다. 여자 친구와 사귈 때는 커플링도 샀다.
그 돈은 어디서 났을까. 아마 부모가 준 돈을 아껴서 샀을 텐데, 아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갈등을 겪다 보면 어느 정도는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하고, 정말 부모라는 배지를 떼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갈등의 고통보다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은 성장통 속에서 자신의 지난 모습을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지금의 나 역시 모르는 것이 많다.
어리다는 것은 나이를 넘어서, 깨닫기 전과 후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조퇴하고 병원에 다녀온 막내는 약봉지 외에 다른 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다.
“너 약 말고 뭐 샀니?”
“안 샀는데.”
“엄마, 알고 있어. 이번엔 4,400원이야.”
“에너지음료야.”
“그래, 다음에는 말하고 써. 말 안 하고 엄마 카드 쓰면 용돈에서 깐다!”
“알았어!”
아들에게 했던 방법을 이제 막내에게도 쓰고 있다. 막내는 밥은 잘 안 먹고 군것질에 돈을 쓰다 보니 용돈을 받을 때면 절반 이상이 빠진 채 받는 날이 많다. 용돈을 미리 당겨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씀씀이도 줄어드는 것 같다.
아들도 병원비나 가끔 미용실에 갈 때는 내 카드를 쓴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 돈을 쓸 때는 자기 카드로 계산한다.
3월 3일,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돈 벌어 보니까 오히려 돈을 안 쓰게 돼. 엄마 생일 선물 사줄게. 같이 점심 먹고 쇼핑도 하자. 엄마, 내일 예쁘게 꾸며.”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아들은 점심을 사 주고, 가방과 신발, 예쁜 커피잔까지 골라 주었다. 나는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워 자꾸만 됐다고 말했고, 아들은 더 좋고 비싼 것을 고르라며 나를 재촉했다.
그렇게 사랑은 주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가까이 와 있었다. 지금도 자라고 있는 사랑. 스무 해 동안 키워 온 사랑이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