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에 오래 시달리시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셨다. 독한 약 때문에 뼈가 약해져 자주 부러지셨고, 여섯 번이나 수술을 하셨다. 늘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이 되어 주셨다. 아버지의 손길 없이는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가려운 곳을 긁을 수도 없었다.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일도 아버지의 몫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시면 아픈 몸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마음을 가졌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언니는 친정 가까이 살며 부모님이 아프시면 가장 먼저 달려가 챙기던 딸이었다. 언니의 마음은 아버지와 같았다. 어머니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화창한 날에 아버지와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매일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떨며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내가 그 입장이라면 삶에 미련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실 때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으로 가시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언니의 마음에는 아직 더 해 드리고 싶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마음에서 나는 깊은 사랑을 느꼈다.
지금 시아버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넘어지시면서 어깨가 부러지셨고 대학병원에 가셨지만, 심장이 약해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첫날에는 식사도 잘하셨지만, 다음 날 의식을 잃으셔서 지금은 산소호흡기를 하고 계신다.
나는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님은 “자신보다는 먼저 가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여든여섯의 연세, 아버님보다 한 살 아래이신 어머님이 자식들을 생각하며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 심장이 약해 수술도 받지 못하시고 의식도 없으시니 오래 버티시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부산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나는 시아버지를 향한 남편의 사랑을 깊이 느꼈다. 그전에는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남편은 금방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몸 상태는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조금 더 좋아지면 수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 어깨에 감겨 있던 깁스를 어머니가 편하게 해 드리려다 풀어버린 일을 이야기하며, 조금 속상한 듯한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으며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언니에게 느꼈던 마음을 남편에게도 느꼈다.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충분히 잘해 드리지 못했지만, 부모에게 아직 더 해 드릴 것이 남아 있다고 믿는 자식의 마음이었다.
아픈 부모가 덜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더 깊은 사랑은, 그런 부모가 다시 회복돼서 함께 밥을 먹고 여행을 가고 하하 호호 웃을 날을 기다리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은 어쩌면 늘 애잔하고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못다 한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했던 시아버지의 삶, 그 곁을 지켜온 시어머니의 짧은 삶, 새어머니와의 시간 속에서 겪었을 굴곡진 세월, 자녀들의 삶.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독하게 희망을 품고 살아왔을 남편의 삶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삶 속에 흐르고 있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