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란 욕심 발견!
나는 어린 시절 가족이 모두 모여 외식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동생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아니 우리 가족은 서로 몰랐고 소통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그늘에 얹혀사는 느낌, 자주 옮겨 다니던 집은 잠만 자는 곳처럼 낯설었다.
집과 학교, 집과 직장, 결혼과 육아.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삶을 산 것 같다. 그래도 늘 고생문으로만 보이던 세상이 변화무쌍한 계절로 바뀐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온 덕분이다. 내 피가 붉게 돌고, 내 눈물이 의미가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갈등 속에 살아도 그 속에서 기쁨이 언제든 찾아와 주기 때문이다.
나는 병으로 일찍 떠난 막냇동생도 그렇지만, 언니도, 동생에 대해서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형제애가 뭔지를 몰랐던 것 같다. 언니는 대학교 때 하숙집에 있었고, 동생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나는 직장생활로 바빴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안 생겼다. 세 자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친정의 대소사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세 자매가 결혼하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았다고나 할까?
4년 전 겨울에 멕시코에 사는 동생네가 조카 겨울 방학을 맞이해 친정에 왔는데, 그때 오롯이 동생과 처음 외식한 것 같다. 그런데 뜻밖의 갈등이 생겼다. 나는 동생과 외식하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화기애애한 식사가 될 거로 생각했다. 동생의 속은 모르지만 내가 느꼈던 시선으로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써 내려간다. 세 번의 식사를 통해서….
첫 번째 식사(1/8일)
동생네와 남영역에 있는 크라운 해태 키즈박물관에서 만났다. 아이들을 위해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조카와 막내딸은 과자집을 만들고 실내 놀이터에서도 즐거워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그곳을 나와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동생이 보쌈으로 통일해서 먹자고 했다. 나는 갈비탕이 먹고 싶어서 따로 시켰다.
보쌈이 먼저 나와 아이들 쪽으로 놓고 내 쪽에는 김치와 장 종류가 놓였다. 그리고 곧 갈비탕이 나왔는데, 점원이 어디에 놓을지 물으면서 동생 쪽으로 놓을 때 동생이 당연히 내 쪽으로 놔주라고 말해 줄줄 알았다.
“제 쪽으로 주세요.”
나는 동생에게 “보쌈이 네 거잖아!”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같이 먹을 건데.”
나는 동생의 행동에 순간 멍해졌다. 내가 정말 먹고 싶어서 시킨 건데 눈치 없이 갈비탕을 자기 쪽에 둔 것에 마음이 상했다. 돌솥밥이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그것도 자기 쪽으로 당겨 식탁 중앙에 놓았다. 언니는 안중에도 없고 모든 음식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는 모습에 적잖은 당황도 하고 속이 상했다. 하지만 동생네와 처음 먹는 점심을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싶어서 상한 마음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그럴 수 있지 뭐.’
나는 속을 다스리고는 돌솥밥을 더 추가하려고 점원을 부르려고 했다. 보쌈에는 밥이 안 나와서 돌솥밥 하나로는 아이들과 나눠 먹기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뭘 더 시켜, 같이 먹으면 되지, 이걸로 충분해!”
동생의 말에 서운했지만 속으로 삭이며 기도하는 마음이 됐다. 또 미션의 때가 왔구나 싶었다. 나는 그래도 더 시키자고 해서 돌솥밥을 하나 추가했다.
내 앞에는 김치와 된장과 새우젓만 있어서 보쌈 두어 점을 가져와 먹고는 입맛이 싹 사라졌다. 갈비탕도 내 쪽에 없으니 먹기도 곤란했다. 동생이 갈비탕을 맛있게 먹다가 내 생각이 났는지 밥그릇에 갈비탕을 덜더니 탕을 통째로 주려고 했다. 나는 만류했지만 동생은 내 앞에 놓아줬다.
나는 동생에게서 ‘자기만 위하네!’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안해하는 마음도 발견했고, 나도 ‘내 것이다!’라는 혼자 먹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생이 처음부터 갈비탕을 내게 놓으라고 점원에게 얘기했다면 몰랐을 마음이었다. 나는 그날 밤 남편에게 동생과 식사하면서 생긴 일에 대해 얘기하니, 남편은
그런 내 모습도 사랑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