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다녀온 아들이 샤워하고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아들방에서 서랍 뒤지는 소리가 나더니 거실로 나왔다.
“엄마, 바지 안 빨았어요!”
“빨아서 넣어놨을 텐데. 이상하다.”
“다 찾아봐도 없어요! 내가 내놨는데. 빨래 안 해요?”
“엄마가 찾아볼게.”
“알았어요.”
아들은 내가 찾아본다는 말에 화난 말투가 수그러졌다. 샤워 소리가 나는 동안 나는 아들 바지를 찾아야 했다. 아들의 잔소리를들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 방에 들어가 옷장 서랍 세 칸을 샅샅이 뒤졌다. 아래에서 첫 번째 칸은 속옷, 두 번째 칸은 겉옷 바지, 세 번째 칸에는 윗옷이 들어있다. 아들이 말한 대로 속옷 칸에는 잠옷 바지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두 번째 칸을 파헤치니 맨 아래에 바지가 박혀 있었다.
‘아, 다행이다!’
나는 일단 찾은 바지를 샤워가 끝나기 전에 욕실문 앞에다 두고, 아들에게 바지를 뒀다고 말했다.
‘바지가 4개나 있는데 2개는 어디로 간 거지?’
한 벌은 빨아야 해서 아들이 내놓았고, 다른 한 벌은 찾아서 욕실문 앞에 뒀고. 두 벌의 바지를 찾아야 하는 미션이 시작됐다!
나는 아들 방을 구석구석 탐색했다. 방구석 모서리에 구겨진 채 똬리를 틀고 있는 한 개를 찾아냈다. 이제 마지막 바지만 남았다! 그 바지는 돋보기 같은 눈으로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 갔을까? 나는 세탁 바구니를 뒤졌다. 겉옷 바구니와 속옷 바구니를 나누어 놨는데, 속옷 바구니에 있어야 할 바지가 없었다. 역시 겉옷 바구니에 있었다. 아들이 구분 안 하고 겉옷과 함께 그 바구니에 투하한 것이다.
‘자기가 아무 데나 놓고선!’
그래도 다행이다. 아들과 갈등의 음계가 낮은 층에서 중간층으로 올라가려다 끝났다.
“엄마, 바지 어디서 찾았어요?”
“응, 서랍에 있던데.”
“그래요!”
아들은 잠깐 말이 없더니, 식탁의자로 가서 차려 논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아들도 나도 공통적으로 실수한 부분이 있어서 쌤쌤이 된 것 같다. 내가 옷을 빨리 빨아 줬다면 아들 잠옷 바지를 찾았을 거고, 아들 옷장 서랍에 넣을 때 첫 번째 칸에 넣었다면 아들이 곧장 찾았을 거기 때문이다. 아들도 더 찾아보지 않고 다 찾아봤다고 말한 것과 방구석에 바지를 던져놓고 못 찾아서 세탁을 못한 점도 있다.
아들은 나와 갈등이 생길 때, 누가 더 잘못했는지가 중요한데 이번에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고 저도 미안해서 넘어간 것 같다. 나도 예전 같으면 이런 일로 아들 방에서 바지를 찾았을때 “여기 있는데 없다고 하니! 잘 찾아보지 않고선 엄마한테 뭐라 그래!”라고 하거나, “옷을 아무 데나 놓고 없다고 하니! 그러니 엄마가 빨지 못한 거지!”라고 말했을 것 같다. 그러면 아들도 반박을 했을 거다.
아들과 갈등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감정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고 해결하는 과정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감정의 음계와 템포를 낮추는 걸 알아가고 있다.
편안한 관계의 행복을 아들과 나는 ‘바지의 행방’을 찾는 것처럼, 찾으면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