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들이 체육복 바지 허리끈이 안으로 들어갔다며 밖으로 빼달라고 했다. 나는 클립으로 할까? 코바늘 뜨기에 사용하는 굵은 플라스틱 바늘로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플라스틱 바늘에 한쪽 끈을 넣어 한 번 묶고 주름진 허리 구멍 안으로 넣었다. 1/3쯤은 잘 들어갔는데 뭐가 문젠지 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바늘을 구부려서 빼려고 하다가 급기야 바늘이 안에서 부러졌다.
'아이고, 안 빠지네!'
나는 순간 욱- 했다. 사심 없이 응당 해주려고 했던 선의가 '욱'으로 바뀌다니.... 또 내게 시험이 왔나 보다!
'왜 아들은 학교 가기 바쁜 아침에 뭘 시킬까?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엄마를 시험하는 것이다.
일주일 전쯤에는 아침에 수행평가 보고서를 출력해 달라고 해서 인쇄를 하는데, 프린트가 갑자기 먹통이 됐다. 프린트가 노트북과는 무선으로 연결돼서 가끔 먹통이 되는데, 그날 아침이 그랬다. 아들은 재촉하며 말했다.
"망했다, 망했어!"
"뭘 망해! 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내일 갖다 드린다고 말씀드려."
"금요일 내는 건데, 선생님께 사정해서 오늘 내야 하는 거라고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진작 낼 것이지! 이제 와서...'
나는 뚜껑이 열리려는 머리를 식히려고 안간힘을 내는 사이, 아들은 재촉하다 시간에 쫓겨 학교로 갔다. 나는 출력을 계속 시도하다가 안 돼서 프린트와 연결된 컴퓨터를 켰다. 두 번 시도 끝에 프린트물이 출력됐다. 이렇게 출력할걸...
나는 기쁜 마음에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인쇄됐어. 학교 가져갈까?"
"이미 망했어요!"
나는 아들이 포기한 마음을 되돌리고 싶고, 빨리 출력해주지 못한 마음도 미안했다.
"학교 지킴터에 맡길게. 지금 학교 가."
아들의 답은 없었다. 수업 중인가 보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엄마가 고등학교까지 가야 돼!'라는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아니야, 아들의 마음을 돌려야 돼! 안 된다는 마음을 된다는 마음으로. 엄만데, 이런 것쯤 못해줘!'
나는 딸들에게 밥 챙겨 먹으라고 말하고 급히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갔다. 학교 '지킴터'에 프린트물을 맡기고, 담임선생님께 아들에게 얘기해 달라고 문자도 보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들한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잘 받았어요."
이 말 들으려고 학교에 다녀온 거다!
오늘 바지 허리끈은 넣다가 안 돼서 말았다. 화가 폭발하기 직전에 바지를 놓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다른 바지 입고 가야겠다."
"알았어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아들은 즉흥적으로 해달라고 하는 요구지만 엄마는 갑자기 해줘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에 내가 취약해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나? 아들이 해달라고 할 때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라고 그러시는 건가? 친정 엄마도 자식들 키우면서 이런 일로 힘드셨겠지!
아들은 다른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고 이번엔 딸이다. 참치유부초밥을 해 놓았는데도 시리얼을 먹고 간단다. 아들을 보내고 가라앉은 화가 딸을 보니 함께 섞여서 올라오려고 했다.
'참아야지! 딸이 시리얼이 좋다는데.'
나는 "유부초밥 먹지!" 라며 툴툴거렸지만 시리얼과 그릇과 우유, 스푼을 딸이 있는 상 위에 놓았다.
엄마는 자식의 심부름 꾼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서 머무르면 불평불만이 쌓이는 것 같다. 좀 더 노력해서 심부꾼이란 마음에서 완전히 탈피해야겠다! 내가 아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해주면 말투도 부드럽게 나올 거고, 불평불만도 안 할 거고, 아이들도 엄마에게 그럴 것이다. 나는 부모의 자리에서 늘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전국에 있는 어머니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