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전화가 왔다. 치아 교정을 받고 있는데, 사랑니가 발견된 모양이다. 나에게 다음 주에 사랑니를 뽑는다고 통보했다. 나는 치과 선생님이 얘기했으면 당일날 뽑지 왜 다음 주까지 미루냐고 했고, 아들은 학원 가야 돼서 다음 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치과에 물어보니 치과 교정선생님이 발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외과선생님한테 가보라고 했단다. 아들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싫고 나는 알고 싶었던 거였다.
사랑니도 당장은 안 뽑아도 되지만 앞 어금니를 누를 수 있게 누워 자라서 뽑아야 된다고 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과 사랑니 얘기가 계속 됐다. 아들은 요즘 내가 묻는 말에는 답이 없고 불퉁한 얼굴로 대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프면 뽑지, 꼭 뽑아야 돼! 사랑니도 다 쓸모가 있데. 나중에 틀니 하게 되면 필요..."
나는 '아차!' 싶었다. 아들이 40 ~ 50년은 지나야 생각하게 될 틀니 얘기를 왜 한 걸까? 나는 후회했다.
"치과 선생님이 뽑으라고 했다고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들은 더 이상 나와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똑같은 얘기를 서로가 돌림노래처럼 할게 뻔했다. 서로의 마음은 갈등의 파도 속에 있었다. 아들에게 뽑지 말라고 하면 갈등이 밖으로 나와 부딪힐까 봐 참았다.
다음 주가 흘렀다. 월요일이었다. 아들은 아침만 먹고, 12시경에 치과에 가려고 했다.
"점심 먹고 가."
"시간 없어요. 늦었다고요!"
"바로 학원에 가? 집에 들렀다가 밥 먹고 가지?"
"나가서 점심 먹고 바로 학원 갈 거예요."
나는 말하는 것마다 번번이 반대하는 아들의 말이 서운했다. 그리고 아들이 집에서 되도록 식사를 하고 가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나와 달랐다. 일찍 학원에 갈 수 있는 방학이 됐고, 이때 하루에 한 끼는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도록 나와 약속을 해놓은 상태라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발치하고 죽을 사 먹으면 좋을 거야.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는 데로 하고."
아들은 아무 답이 없었다. 그런데 학원에 바로 가기로 한 아들이 집으로 왔다.
'엄마 말대로 점심이라도 먹고 가지. 치과에 좀 늦으면 어때서. 이렇게 고생할걸.'
아들은 이가 아프다면 부은 얼굴로 얘기했다.
"저 오늘 학원 빠질래요."
"왜 하필 월요일에 발치하러 갔니! 금요일에 가면 되는데."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시간까지 아들이 밥을 못 먹은 것과 학원에 빠지게 된 것도 그랬다. 나는 아들에게 4시 반부터 식사해야 되지 않겠냐고 몇 번 물었고, 아들은 왜 자꾸 밥 타령이냐고 핀잔했다. 아들은 아침에 시리얼로 때우고 점심도 못 먹은 상태로 7시까지 누워있었다.
"엄마, 죽 끓여주세요."
"아까는 마취 풀리면 밥 먹어도 된다며?"
"인터넷 검색해 봤는데 죽을 먹으래요."
나는 화가 넘칠 지경이었다. 한 대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밥 먹는다며 좋아서 나갔으면 죽이라도 사 들고 오지, 이따가 밥 먹겠다고 했으면서 저녁 먹을 시간에 죽을 끓여달래! 나는 또 기도하는 마음이 됐다. 나는 찬찬히 내 마음을 살폈다.
'아들은 이가 마취 상태라 밥을 못 사 먹고 아픈 상태로 학원에 가기도 어려워서 집으로 온 거야. 하지만 아들이 엄마 말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모든 걸 자기가 원하는 데로 결정해서 나는 너무 서운했어.'
이 마음으로는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아들을 한대 치면, 그 상처로 아들도 아빠가 돼서 화가 났을 때 자식을 치겠지!'
나는 손자가 아들한테 맞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뜨였다.
'말자, 말어!'
내 마음이 평정을 찾자, 죽을 빨리 끓여주는 방법이 생각났다.
'야채를 갈고, 동그랑땡 남은 걸 다져서 있는 밥에 물만 부어 끓이면 야채죽이 돼. 그걸 아들한테 주면 되겠다!'
나는 후다닥 죽을 만들어서 아들 방에 놓았다.
아들이 밥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서 웬일인지 나를 찾았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표정이 밝았다.
"엄마, 나 이쪽에 좀 부었죠?"
"그래 좀 부었네, 많이 아프겠다."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즘 나에게 퉁명하게 보이던 얼굴빛이 '싹' 사라져 있었다. 아들의 얼굴을 보니, 참길 잘했다고 느꼈고 나도 아들 마음을 좀 더 살피지 못한 게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