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금나비 Jun 18. 2024

스케이트장은 어디야?

아들 이해하고 칭찬하기

입춘이 지난 2월둘째주 일요일, 모처럼 따라 붙는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서울광장스케이트장에 갔다.

예약을 2주 전에 해놓고, 은평구에서 중구 스케이트장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곳이라 생각하고 급한 마음에 점심은 밀키트로 부랴부랴 해 먹었다. 12시 반쯤 나섰는데 버스는 갈아타지 않아서 편했고 자리에 앉은 후로 몇 십분 깜박 졸다 일어나도 한참의 여유가 있었다.     

“남자 외국인은 다 멋있어!“
 주위를 둘러보던 아들이 외국인 남성을 선망하며 말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멀쑥한 외국인이 배낭을 메고 한국에 와서 여행하는 모습이 자유롭고 멋져 보였던 것이다.

“외국에 가서 너도 혼자 여행 다니면 외국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볼 걸!”

나는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광화문에 내려 이순신장군 동상을 지나치고 있었다. 몇 명의 외국인들이 동상 아래에 일렬로 서서 사진 찍는 걸 볼 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이에는 아무 런 일이 없었다. 그 때가 오후 1시 20분정도 됐을 것이다. 버스에 내리면 표지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스케이트장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좀 걱정이 됐다. 아들이 뭐라고 나무랄 텐데…….  


나는 무작정 느낌 가는 데로 시원하게 뚫린 광화문만을 보며 앞장을 섰다. 시청방향으로 가야하는데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거다. 나는 오늘도 길치였다.

“엄마 스케이트장이 안 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이리로 쭉― 가면 되겠지 뭐.”

나는 순간 씩씩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엄마는 알아보지도 않고 왔어요?”
 “여기 내려서 도보로 7분 거리쯤 된다고 해서 보이는 줄 알았지,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잖아!”

아들을 보니 내 말이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미안해, 다음엔 잘 알아보고 올게.”

나는 멋쩍은 듯 말했다.
 “맨날 그 소리, 전에도 그랬잖아! 다시는 엄마 따라오나 봐라.”

아들은 볼멘소리를 하며 ‘팩’ 하고 돌아서서 혼자 걸어갔다.

“어디가?”

어느새 초등학생인 막내딸도 오빠를 따라가고 있었다.

‘2주 전부터 얘기했는데 너도 찾아보면 되지, 항상 엄마를 나무란다니까. 내려서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 찾아보면 되잖아!’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들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계속 불평불만을 토해낼게 뻔했고 무엇보다 갈등이 커질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아들은 혼자 집에 갈 돈이 없었다. 엄마를 믿고 온 것이다. 여행가거나 놀러갈 때 불평불만하면서도 매번 백 프로 엄마를 믿는데 이런 아들의 심리는 뭘까? 나는 토라져도 조금 지나면 다시 올 아들을 생각하니 고소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길을 몰라 걱정이 되고 아이들 걱정도 돼서 나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아들을 잡아 세우며 말했다.

“엄마도 이럴 줄 몰랐지, 2시반 되려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걸어서 가보자. 응?”
 “반대방향이에요. 서울광장은… 저 빌딩 너머로 직진해서 가면 된다고요. 내비게이션을 보라고요!”

아들이 걸으면서 화가 좀 누그러진 듯 보였다. 나는 아들한테 무시당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맞받아치진 않았다.

“그래, 내비게이션을 봐야겠네.”

나는 종종걸음으로 아들 뒤를 따랐다.     




야외에 설치된 서울광장스케이트장이 보이고 바로 맞은편에는 이태원참사 분향소가 있었다. 나는 스케이트장에 가기 전에 꽃을 헌화하고 아이들을 찾으려고 주변을 보니 아이들이 안보였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물품보관실 앞에 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물품보관실에 도착했을 때 스케이트를 타기 한 시간 전이었다. 아들을 보는 순간 투우사 앞에 슬슬 황소가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올 걸, 한 시간이상 기다려야 하잖아! 시간 안보고 뭐하셨어요?”

사춘기 아들의 화난 뿔에 투우사처럼 천을 씌우듯 돌아서서 집으로 곧장 가려고 했으나, 그동안 참았던 게 억울해서라도 조금만 더 참자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저기 매점에 가서 핫도그나 떡볶이라도 먹으며 기다리자. 어서 가자!”

나는 재촉하며 딸에 팔짱을 끼고 데려갔다. 아들도 따라 들어왔다.

“애들아, 떡볶이? 아니면 오뎅?”

나는 메뉴판을 보며 고르고 있었다.

“오뎅 먹을래요.”

딸이 말했다.

“이런 음식가지고 때우려고 하지, 시간도 안보고 이렇게 일찍 데려 와아! 나는 안 먹어! 시간이 남으면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세웠어야지…….”

아들은 계속 불평불만을 하다가 매점 밖을 나갔다. 단돌이도 입맛이 사라졌는지 안 먹겠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화가 나서 아들을 부르지도 찾지도 않았다. 물품 보관하는 라커에 가방과 가져온 물품을 넣고 딸이 원하는 데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보조기를 잡고 타는 아이를 밀어주면서 방법을 가르쳐주는 아빠, 넘어질까 빙판만 보고타는 할머니,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서로 추월하여 달리는 청소년들, 엉덩방아 찧고 부모를 부르는 아이들…….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아들에 대한 미운 감정들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휴식시간이 돼서 사람들이 스케이트장 출구로 우르르 나왔다. 50분 스케이트를 타고 30분 휴식시간인데 이 시간은 롤러 같은 큰 장치를 단 차가 빙판을 평평하게 정리했다.

휴식시간에 매점에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장비 대여소에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다음 타임에 스케이트를 타려면 먼저 신발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았다면 첫 번째로 줄에 설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줄을 섰을 때는 휴식시간 10분이 흐른 터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아, 지금 스케이트 신발을 대여해야 돼서 줄을 섰어. 너도 지금 와야 되”

“알겠어요.”   

아들이 내 옆에 와서 섰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아들도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휴식시간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섰네. 더 일찍 와서 줄 서는 사람도 있더라.”
 나는 아들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말했다. 아들은 답을 안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신발을 신은 채 안전모를 쓰고 우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스케이트장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함께 들어간 것 같은데 옆에 아들이 없었다. 나는 스케이트 타는 것이 처음엔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물론 세 번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보이지 않던 아들이 갑자기 어깨를 툭 쳤다.

“엄마, 나 운동 신경이 좋은 가봐! 한 번도 안 넘어졌어. 하하하!”

아들은 화가 언제 났었냐는 듯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바람같이 달렸다. 길쭉한 다리에 날씬한 몸,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지 않고 달리는 것 같았다. 피겨스케이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보다 우리 아들이 최고 멋져보였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제일 예쁘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래, 잘 타네. 최고다! 최고!”

나는 아들을 보며 엄지 척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 사진을 ‘팡팡’ 찍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나는 휴식시간이 되기도 전에 스케이트장을 나왔다. 아이들 사진, 내 사진을 찍으며 휴식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재미있었어?”

“응, 옛날 추억이 떠오르더라고.”

“언제 갔었나?”

나는 가물가물해서 물었다.

“중학교 때 실내 스케이트장에 같이 갔었잖아! 그리고 친구들과 몇 번 갔었어.”

“그랬구나, 어쩐지 잘 타더라고.”

아들의 얼굴에는 미소만이 가득했다. 지난주에는 딸과 눈썰매장에 갔었는데, 아들이 내키지 않는다며 갑자기 취소를 했는데 이번에는 따라왔다. 친구들하고 가는 게 아닌데 아들이 따라온 걸 보면 아들이 스케이트 타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아들의 마음을 그 동안 잘 몰라줬다는 걸 느꼈다. 스케이트 타러 자주 같이 다닐 걸…….


오늘 너무 일찍 스케이트장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기다리게 한 일, 스케이트를 빨리 타지 못해서 아들이 화냈던 일이 이해가 됐다. 아들이 엄마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아들의 마음을 받아주면서 나 스스로에게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 우리 구파발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 먹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어요!”

“그래, 거기서 먹자!”

우리는 식당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아들은 아까 일은 잊은 듯했다. 오늘도 아들과 서로 상처투성이 전쟁이 일어날 뻔 했는데 잘 넘어갔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도 더 잘 알게 된 시간이 돼서 스케이트장에서 벌어진 일이 다 행복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들은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겠다며 남았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딸과 음식점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