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세 그녀의 이야기
“나와서 장끼자랑할 사람 손 들어봐요.”
“아무도 없어요? 춤이든 노래든 이야기든 아무 거라도 괜찮으니까 자~ 손 들어보세요.‘
선생님이 후미진 창경원 정원에 무리 지어 앉아있는 70여 명의 어린이들 앞에서 큰소리로 외쳐댔다.
“이런~ 아무도 없네.. 우리 반 차례인데..”
“선생님! 저기 손 든 애 있어요.”
“어디?” 선생님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저기요. 선생님 바로 앞에요.”
“아! 등잔 밑이 어두웠네. 차** 앞으로 나와요.”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 엄마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그녀가 초등학교 입학하도록 서두르셨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한 뼘은 작았다. 지휘봉을 든 선생님은 교실을 꽉 채운 어린이들을 이열 종대로 세우시고는 키 순서대로 아이들을 넣다 빼다를 반복해가며 차례로 자리에 앉히셨다. 그래서 그녀는 늘 앞줄에 앉아있게 되었고 그 앞자리 앉기는 평생의 습관이 되어 지금도 앞자리에 앉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자화상 이미지를 그리면서 왜 어린 시절 소풍날 풍경이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뭣도 모르면서 무작정 손부터 들고 타인 앞에 서서 춤추고 노래하며 떠들어대던 그때의 철부지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59년 인생 드라마의 한 테마가 되고 있다는 하나의 발견이자 깨우침이리라...
그녀는 한때 말을 더듬었었다. 명절 때마다 행사처럼 집을 찾아오신 큰아버지가 약간의 중풍에 심한 말더듬이셨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소년 시절 큰 질병(학질?)으로 뇌손상을 입어 그리 되신 것이라 했다. 그래서 결혼도 못하시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시골 농가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살아가셨다. 추석이나 설날 즈음이면 집에 오셔서 한 열흘쯤 묵어가셨는데, 그때 큰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언어를 따라 하다 그리 된 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첫 말 꼬를 트려면 무척 힘이 들었다. 첫말을 시작하기가 힘들어 우물쭈물 버벅거리면 상대는 그런 그녀가 답답해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탁!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의기소침해진 그녀의 마음에 슬며시 분노가 쌓여갔다.
그런데 어느 날 마법이 일어났다. 일대일로 대화할 때면 더듬거리는 그녀가 신기하게도 다수 앞에, 소위 공식적인 무대에 서자 거침없이 준비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거다.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박수를 쳐댔다. 그녀는 무대에서 멋지고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말 더듬는 횟수가 줄어들고 말더듬이병은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대학 재학 시절 그녀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어 타인의 몸짓과 언어를 흉내 낸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뚜렷한 인생관도 철학도 없었던 그녀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매개체로서, 자신의 신체와 언어를 도구 삼아 타자를 표현해낸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졸업 후 기회를 얻어 중학교 교사를 하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양육하며 살아갔다.
마흔 즈음에 교회에서 드라마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교회 내 극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그녀는 극단의 이름을 위해 기도했다. 교회 새벽 기도의 자리에서 그녀는 <아이얼>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아이얼>은 우리말로 ‘아이의 얼’이기도, 영어로는 ‘eye’와 ‘ear’의 합성어인 ‘Eyear’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이 이름과 함께 다음의 성경구절을 가슴에 품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3~4)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줄까 함이라..” (사도행전 28:27)
지금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수년 전 젊은이들과 어울려 작업했던 작품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의 공연 사진 중 한 컷이다. 그 사진을 올리면서 첨부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무대에 서다”
새삼스레 그녀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숙연해진다. 그 메시지에 환영처럼 어른거리는 또 다른 접미사와 동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무대를 내리다”
그녀가 이제껏 세워온 이미지는 무대를 내린 후 타자에 의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수정 보완되어 남거나, 아니면 아예 삭제되어 버릴 수 있겠거니 싶다.
아이얼
Eyear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