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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얼 Feb 15. 2021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가설이 밝혀지는 게 그의 희망?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을 읽고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의 지성은 예고도 없이 쉽게 길을 잃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지성만큼이나 희망적인 환상에 영합하여 아무런 근거도 없는 진리를 쉽게 믿어버리는 존재도 흔치 않다." -434쪽-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유대인 가정 출신이다. 많은 후대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이 그의 연구 및 업적들을 표본으로 삼아 관계된 연구들을 진행시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


<종교의 기원> 후반부에 실린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는 프로이트 생존 시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이번에 특별히 관심 가지고 읽은 내용이다.


사실 ‘프로이트 책 읽기 프로젝트’ 처음 신청 시에는 막연히 프로이트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에 덥석 끼어들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여러 가지로 내면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기독교인으로서 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를 유대인이 아닌 이집트인으로 가정하는 것이나, 모세의 죽음을 자연사가 아닌 살해당한 것으로 단정하고 논지를 이어나간 것 때문이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시나이반도, 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물이 풍부한 카데스에서 친연 관계가 있는 다른 부족과 합류하고 화산 신 야훼를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다는 가설이 더해진 것이다.


사실 논지의 전후 문맥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근거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논거의 글을 읽는다는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한 달 이상을 벽돌같이 두꺼운 미술사 책을 읽고 정리해가면서 나름 지쳐있던 터에 이런 난해한 내용은 심리적으로 매우 큰 부담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읽은 첫날밤 잠자리에서 악몽에 시달렸고, 그 날 이후로 연휴 며칠 동안 영혼과 육신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내 몸이 이 책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도 약속한 일이기에 겨우겨우 읽기는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주관적 사고를 펼치기에는 스스로의 논거가 너무 빈약하다.

책을 읽고 난 느낌만으로 리뷰를 쓴다는 게 께름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써서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다.


이집트 왕조 중 18 왕조 아메노피스(후에 아케나텐이라 자칭함)가 태양신 아텐을 유일신으로 섬겼고, 모세는 그 아텐을 받들어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시도했다는 가정은 매우 흥미롭고, 그만큼 있을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면에 저자 프로이트가 언급한 대로 '우리의 지성만큼이나 희망적인 환상에 영합하여 아무런 근거도 없는 진리를 쉽게 믿어버리는 존재'인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판타지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제반 논거들을 찾아내고 결론을 이끌어내어 이제껏 '진실'로 여겨져 왔던 기존의 사실들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뒷받침이 필요하다. 프로이트 사후 계속 이어지는 학자들의 연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섣부른 가설과 논제로 인하여 독자의 머리를 이렇게 뒤숭숭하게 했다면..

그리고 이제껏 시원한 해답 논문 하나 나오지 못했다면... 

이 <종교의 기원>은 뚜렷한 결론도 없이 독자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거운 책임에 틀림없다.




다음은 책 본문에서 발췌한 프로이트의 이야기 중 일부이다.


"나는 유대인의 해방자이자 율법의 제정자인 인간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다는 가설에 바탕을 둔 새로운 논거의 마련을 시도한 바 있다.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의 이름이 이집트 어휘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주장에다 내가 덧붙인 것은, 모세와 관련된 기아 신화의 분석을 통하여, 모세는 이집트인이었지만 한 민족의 요구에 따라 그를 유대인으로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의 말미에 나는,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가정으로부터는 광범위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이것은 심리학적 개연성만을 근거로 하는 것일 뿐 객관적인 증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공공연하게 지지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라고 썼다. 심리학적으로 얻은 견해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이것 - 진흙 토대 위에 세운 청동상 같은 -을 외부 세계의 비판적 공격에 내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은 그만큼 더 강렬해진다."


"한 문제의 각 부분이 모두 조각 맞추기 퍼즐처럼 아귀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개연성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라고 해서 모두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어떤 민족도, 고대 이집트인만큼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힘을 쏟고 피안에서의 새 삶을 준비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 적이 없다. 따라서 저승 세계의 지배자이자 죽음의 사자신(使者神)인 <오시리스>는 이집트 신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인정되는 신인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유대 종교는 영생 불사 개념을 전적으로 폐기했다. 사후의 삶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 까닭은, 그 이후 시대의 경험에 따르면 내세의 삶에 대한 믿음은 유일신교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가설이 결실을 맺고 다양한 방향을 조명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설에서 이끌어 낸 첫 번째 결론 - 모세가 유대인에게 베푼 종교는 모세 자신이 신봉하던 이집트 종교 -은 두 종교의 차이 혹은 두 종교의 상호 모순되는 본질에 대한 우리들의 자각에 일대 혼란을 일으킨다."




이렇게 프로이트 자신도 스스로 심리적 심증은 있지만 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설을 내민 학자조차도 확증하지 못하고 결실을 맺길 희망하고 만 내용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에는 이밖에도 알아야 하고 밝혀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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