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괜찮아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곰브리치의 미술사 27장을 읽다가

by 아이얼

"미래는 옛 것이건 새로운 것이건 양식이나 장식의 편견에서 탈피하여 새로워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 젊은 건축가들은 건축이 예술 Fine Art에 속한다는 관념에 집착하지 않고 장식을 거부하였으며 건축을 그 목적에 비추어서 새롭게 보자고 제안하였다."


"건축가가 의뢰인에게 전혀 선례가 없었던 비전통적인 집을 짓자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에게 강인한 정신과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 1869-1959)는 주택에서 중요한 것은 방이지 건물 정면의 외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통해 낡은 건축 습관 - 엄격한 좌우대칭을 요구하는 전통적 건축방식을 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는 예술. 손끝의 차이로 예술이 판가름 난다면..

사람의 손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각!

그런데 생각만 한다고 손이 움직여지나?

물론 아주 기본적 인간의 욕구는 단순한 생각대로 별 저항 없이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손놀림일 때, 익숙함을 버린 것일 때는 생각만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생각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그에 맞는 단어가 뭘까..... '신념'?

나의 생각에 믿음을 더하는 작업이 신념이다.

믿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한다. 주관적,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몇 번의 시행착오에도 뒷걸음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게 변혁은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이렇게 결과로 드러난 것을 일반인인 내가 역사적, 연대기적으로 수욱~ 훑고 지나 가는 일은 얼핏 지루하고 맹숭맹숭한 작업으로 여겨지지만...

이정표를 찍었던 자들에게는 극히 치열한 순간이었다.

보여주는 건축물이 아니라 들어가서 지내는 사람과 유기적으로 관계 맺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신념으로 이어져 결실을 맺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지나갔고 허다한 사람들이 살아갔다.




무구한 역사에서 티끌 한 점으로 사라지는 '나'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순간순간 방점을 찍은 자들을 바람처럼 스쳐가는 '내'가 기억하고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룩해 놓은 결과물 안에서! 그를 충분히 누리면서 말이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내용이라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이야깃거리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데는 다아 이유가 있다.


요 며칠 몸살을 앓았다.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사이에 함께 시작했던 회원들은 마지막 28장까지 마지막 점 - 마침표를 찍었다.

난 내용 정리할 엄두는 안 나고... 그냥 읽어 내려가면서 밑줄 치고 메모만 할 뿐이었다.

그것조차도 힘겨웠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는 것도 얼마나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는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그 생각을 나의 신념으로 바꾸어놓는 과정, 그 과정이 내게는 나름 치열한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 창조 행위(미술)도 아니고, 그 창조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역사적 순간, 이정표를 찍는 그 행위를 담당했던 당사자들이 어떠했을까 아주 쪼끔 추리하게 되었다는 거다.


아! 오늘따라 뭉크와 케테 콜비츠의 석판화가,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목조각 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강렬한 표현이 내 억눌림을 대변하고 호소하는 듯하다.


난 이렇게 연약하다. 며칠 동안의 고통에도 궁핍으로 머리를 싸매고 비명을 질러대고...
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부여잡고 드러낼 것은 텅 빈 손 밖에 없는 것을...

에드바르드 뭉크, <비명>, 1895년, 석판화 / 케테 콜비츠, <궁핍>, 1893-1901년, 석판화
에른스트 바를라흐, <불쌍히 여기소서>, 1919년, 목조,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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