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야기 4-1
로마제국 쇠망사 4권의 첫 시간.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해서 모임 장소 가기 전에 단골 떡집에 들러 송편을 샀다. 아침 간식으로 커피와 함께 먹기 좋을 것이다. 덕분에 회원들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았다. 손뼉 치며 노래하고 사진 찍고~ 유쾌한 첫 시간이다.
일주일에 2회, 한 번에 2시간 30분 정도 낭독을 진행한다.
혼자서 읽으면 중도 포기하기 쉬운 고전 읽기를 서로 격려하면서 읽다 보면 뜻하지 않았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새삼 내가 속한 사회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인식한다. 이전의 난 이런 고전 읽기에 흥미 없었는데 이리 변화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읽기 진도에 맞춰 '쓰기'를 하겠다고 큰 맘먹고 자리에 앉은 것이다.
오늘 내가 주목한 중심인물은 동 고트족 왕 테오도리크이다.
8살부터 18살까지 10년간을 동로마 제국 레오 황제의 허락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수학한 그는 돌아와 마지막 기운 서로마의 이탈리아를 평정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33년) 다스린다.
그의 뛰어난 지도력과 인품, 심리 등이 책 곳곳에 드러나있다.
테오도리크는 신하 카시오도루스가 공공 서한집에서 '우아한 야만인'으로 표현할 만큼 지혜롭게 처신했다.
사나운 동 고트족 기질을 타고난 그였지만 주어진 환경과 교육 안에서 신중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리더십을 발휘한다.
현명한 테오도리크는 자신이 로마인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동족에게는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백성들은 오두막에서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겪고 있는데, 왕이라는 자는 그리스풍의 사치에 젖어 있다는 대중의 불만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제논 황제의 옹호자로서 고트족에 맞서느냐, 아니면 황제의 적으로서 고트족을 이끌고 싸우느냐 하는 두 가지 어려운 대안을 놓고 깊이 고심했다. 마침내 자신의 용맹과 야심에 부합되는 방법을 생각해낸 테오도리크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신은 폐하의 은혜로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부디 제 가슴에서 올려오는 소망을 들어주십시오. 폐하의 선조들의 땅이었던 이탈리아도, 세계의 우두머리이자 연인인 로마도 지금은 용병 오도아케르의 폭력과 억압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저와 저의 군대가 그 폭군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패배한다면 폐하는 돈이 많이 들고 귀찮은 친구에게서 해방될 것이고, 하늘이 도와 제가 승리한다면 폐하의 이름과 영광 아래서 로마 원로원과 저의 군대에 의해 예속에서 구원되는 공화국의 일부를 통치하게 해 주십시오."
( p.8 )
이러한 테오도리크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그는 오도아케르를 물리치고 이탈리아의 정식 왕으로서 안정적인 통치 국가를 이룩하게 된다. 당시 사면초가의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대응 처신한 그의 현명한 기지는 작금의 한국 정치인들도 눈여겨볼만한 점이라 생각된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꿔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하지만 신중하고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고 있다.
테오도리크의 승리는 서방의 야만족들에게 보편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지금의 승리에 만족하며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공포는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야만족들의 분쟁을 화해시키고 습성을 교화시키려는 선한 의도로 이루어진 그의 강력한 중재에 복종했다. 유럽의 먼 나라에서 라벤나의 궁정을 방문한 사절들은 그의 지혜, 기품, 예의 바름에 감복했다. p.15
이렇게 그의 평화정책은 주변 민족들을 감동시켰고 한치의 의심 없이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정치적 안정과 아울러 경제적 활기도 이어져 국가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테오도리크는 세계 각국과 교역할만한 귀중한 물품을 풍부하게 소유한 이탈리아를 무역의 중심지로 이끌었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그의 무역 장려정책으로 육로나 수로를 통한 속주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복구되고 확대되었다.
당시의 태평성대를 대변해주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무척 상징적이다.
"도시의 성문은 밤낮으로 활짝 열려 있었고, 금화가 든 지갑을 들판에 놓아두어도 그대로 있었다."
p.24
- 백성의 변심으로 인한 질투심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해도 흠이 있게 마련이다. 왕의 주변 친인척들의 탐욕과 비리, 과다하다 여겨지는 세금 징수, 특정 종교 박해 등의 문제들로 백성들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테오도리크왕을 모함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하면서 왕은 참담한 심경이 되었다.
이 이탈리아의 왕은 영광스러웠던 삶의 말년에 와서야 자신이 그토록 힘겹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자 애썼던 그 백성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은 보답받지 못한 사랑으로 비통했고 분노했으며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p.28
또한 동로마의 형제들에게도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교황 사절단을 이스탄불로 보냈는데~
그 사절단 대표인 교황에게 유례없는 존경이 주어지자 질투에 사로잡힌 테오도리크는 그들을 처벌하고 예배를 금지시키려고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 기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백성들과 적들의 편협한 신앙 때문에 가장 관대했던 군주가 종교 박해의 문전까지 몰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테오도리크의 삶이 너무 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고결했던 보이티우스와 심마쿠스마저 손수 단죄하고 말았던 것이다. p.29
- 충신을 멀리함
위대한 통치자에게는 훌륭한 브레인이 되어주는 인재가 꼭 필요하다.
외로운 국정수행의 지혜로운 조력자의 유무에 따라 통치 말의 운명이 판가름되기도 한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고, 그들의 간언을 경청하고 분별해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지도자의 몫이다. 테오도리크에게 보이티우스와 카시오도루스가 그런 인재이자 신하였다.
그러나 말년의 테오도리크는 분별력을 잃고 흔들리고 말았다. 충신인 신하 둘을 죽이고 나서 죽을 때까지 처절한 회한으로 괴로워하다가 라벤나의 궁정에서 암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다음의 일화는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그의 회한을 보여주고 있다. 한 위대했던 지도자의 마지막 영혼 앞에서 숙연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테오도리크는 어느 날 저녁 식탁에 머리가 큰 생선이 나오자, 갑자기 심마쿠스의 노한 얼굴이 보인다고, 두 눈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입에는 길고 날카로운 이빨이 나 있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왕은 방으로 돌아가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도 학질에 걸린 듯 덜덜 떨다가 시의 엘피디우스에게 보이티우스와 그의 장인 심마쿠스를 죽인 일을 깊이 후회한다고 더듬더듬 고백했다고 한다. p.36
이상과 같이 세 가지를 주목해보았다.
이런 류의 역사서를 읽고 정리하면서 아쉬운 점은 내가 느낀 모든 내용을 옮겨 적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애매모호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대부분이라 감히 비판하고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쓴 작가의 관점에 맞추어 쓴 내용에만 의존하여 섣부르게 각 인물을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작정 써내려 가다 보면...
언젠가 내 의견이 오류로 판정되어 첨삭되기도, 몰랐던 사실이 부가 설명되어 깊이가 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탐구해가는 '나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야기'가 되길 빌어본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