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황제와 테오도라 / 당파싸움 (로마제국 쇠망사 4-2)
오늘은 6세기 초, 중반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읽어보았다. (로마제국 쇠망사 p.39~61)
유스티누스는 다키아(다뉴브강 하류 만곡부의 북안北岸을 가리키는 루마니아 고대의 지명) 출신의 농부였다.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상경, 황제 근위대로부터 시작해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일반 근위대원에서부터 시작해 근위대 최고 수장이 되기까지 50년 동안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가 모시고 있던 아나스타시우스 황제가 사망하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국가의 2인자로 권력을 쥐고 있던 환관 아만티우스는 죽은 황제의 인척 가운데 자신이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자를 세우려고 저울질한다. 누구에게 왕관을 씌워줄 것인지 고심하는 사이 그는 유스티누스에게 막대한 기부금을 맡겨둔다. 유스티누스는 이 자금을 발판으로 삼아 기회를 노려 환관의 책략을 뒤집어엎고 자신이 황제로 등극한다. 그것도 주변 사람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말이다. 이때 그의 나이 68살. 시골 농부 출신의 무식한 군인이 하루아침에 대로마의 황제가 된 것이었다.
이렇게 어부지리로 황제의 자리를 꿰찬 유스티누스는 스스로 황제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인지한다.
그래서 그는 유능한 재무관을 기용해 국가의 재정을 맡기고, 조카 유스티니아누스를 입양해 상속자로 삼는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지혜롭게 처신했던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양쪽 다 준비하고 교육받는 시간이 주어졌고, 비교적 순탄하게 승계가 이루어졌다.
유스티니아누스야말로 삼촌 유스티누스의 운빨을 넘어서는 인물이다.
가만히 있다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화락! 붙잡은 것이다.
원래부터 황제로 예비되어 교육받아온 자인양 그렇게 황제로 세워지고 38년 7개월간 동로마를 다스린 인물이다.
오늘 그에 관해 읽으면서 주목한 점은 다음과 같다.
- 백성들의 호감을 얻고자 열심히 준비했다.
그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기질을 발휘해서 각종 공공행사 등을 돋보이도록 감각적으로 꾸며 백성들의 심미안을 틔워주었다.
또한 당시 기독교 교리를 학습하고 이해하면서 교회를 존중하고, 자신의 신앙심 및 너그러운 행동거지로 당대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등 성실하게 자신의 입지를 세워나갔다.
- 테오도라와의 세기적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오늘의 가장 핫한 주제이다. 미모의 여인을 택해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은 역대 로마 황제로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러나 테오도라와의 이야기는 그러한 일반적 스캔들을 넘어서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창녀인 한 여인을 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대가를 치렀고,
끝까지 그녀를 세워주며 책임지고 지켜주었다.
왜 유스티니아누스는 테오도라에게 매료되었고 끝까지 순정을 다했을까?
나의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었다.
"테오도라의 아름다움은 유스티니아누스의 마음을 사로잡아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버렸다. -중략- 지극한 신앙심 또는 원래 타고난 성품 탓으로 오랜 철야기도와 절제된 식사에만 익숙해 있던 젊은이를 흥분시켰을 것이다."
저자 기번은 이렇게 테오도라와 유스티니아누스의 만남의 과정을 언급하면서 일반적인 남성의 잣대로서 그를 평가하는 듯하다. 그러나 난 이 부분에서 오히려 유스티니아누스의 신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혹 그가 테오도라의 전략적 유혹에 걸려든 순진한 남자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다. 비천한 한 여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세우기 위해 과거의 법체계까지 바꾸고야 만 이 남성을 어찌 온 맘 다해 사랑하며 따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 남자의 헌신적 사랑은 부도덕했던 그녀를 고귀한 여제로 승격시켜놓았던 것이다.
사랑은 계급이나 신분을 초월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런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한결같은 애정과 불굴의 의지로 주변인들의 반대를 참을성 있게 견디며 이겨내었다.
그는 삼촌 유스티누스 황제의 이름으로 과거의 엄격한 법 체제 폐지 법령을 공표했다.
명예롭게 회개를 하면 극장에서 몸을 팔았던 불행한 여인들에게도 로마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과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사면으로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는 격식을 갖춘 결혼식을 치르고 정식으로 로열 패밀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극장의 수많은 구경꾼들 앞에서 음란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창녀 배우가~
당당한 여제로서 여러 고관대작들의 추앙을 받는 여걸로 변신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번의 글에만 의존하여 그를 상상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유스티니아누스의 각별한 러브스토리를 읽으면서 성경의 '아가서'가 떠올랐다.
그리고 황제의 타고난 기질과 성장배경과도 연관시켜보게 되었다. 그도 원래부터 귀족 가문은 아니었으니까..
그의 심미안, 예술가적 마인드는 일반 시민의 잣대와는 다르게 상대 여인을 평가했을 듯싶다.
처음엔 물론 테오도라의 빼어난 미모에 반했겠지만...
그녀와 교제하면서 그녀의 속내에 담긴 가치와 가능성을 간파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육체적 사랑을 넘어 영혼이 통하는 부부가 되어 늘 새롭게 소통할 수 있는 연인 같은 부부관계를 세워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이 문장에서 그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테오도라는 타고난 매력과 후천적으로 익힌 기교를 통해 유스티니아누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 p.55
기번의 이 생각을 살짝 비틀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테오도라는 타고난 매력에 더해, 계속해서 우아함과 기품을 익히고 연마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지극한 사랑에 감복, 대응하는 그녀의 노력이 황제와 더불어 아름답게 승화되었다."
그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가 한 여인을 밑바닥 창녀에서 최고의 여제로 승화시켜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여러 환경적 장애를 뛰어넘는 세기적 사랑을 나눈 이 부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순애보는 기억력 나쁜 이 여인의 머릿속에 잊히지 않고 또렷이 기억될 것 같다.
"결혼한 지 24년, 여제의 자리에 올라 제국을 다스린 지 22년 되던 해에 마침내 테오도라는 암에 걸려 시들어갔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여 그녀의 남편은 애통해했다. 그라면 동로마제국에서 가장 순결하고 가장 고귀한 처녀를 얼마든지 택할 수 있었는데도 극장에서 일하던 창녀였던 여자를 애달파했던 것이다."
저자 기번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이 역사가 프로코피우스의 비사를 참고해서 기록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의 이야기나 당시 사회상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참고는 하되 개인적인 편견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기술이 될 수 있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적을 비트는 내용의 <비잔틴 제국 비사>가 번역본으로 나와있다고 하니 기회 있을 때 읽어보아도 좋겠다.
녹색파는 녹색 들판의 이미지로 농부와 민중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이다.
청색파는 푸른 하늘의 이미지로 귀족과 도시 시민들을 대표한다.
예나 지금이나 파벌 짓기는 인간 사회의 정치적 특성이 아닌가 싶다.
이런 당파싸움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각 독자들의 경험과 연결되어 하나 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 이분법적인 사고를 형성하고, 한쪽을 택일하여 입지를 강요하는 정치권력구도는 정치사회의 필요악인 듯하다.
"승자에게는 월계관이 포상으로 내려졌고, 그와 그의 가족과 출생지의 명예는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비보다 더 오래 전해지는 노랫가락에 실려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다."
당시 국가적 스포츠 경기였던 전차 경주를 예를 들어 서술한 이 대목은 사람들의 입소문의 위력을 시사해주고 있다. 사람을 무리 짓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바로 이 입소문에 있다는 것이다.
녹색파와 청색파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 경기는 전염병처럼 동로마제국 및 속주와 도시들로 퍼져나갔고, 절대 화해할 수 없는 두 파벌을 만들어내어 미약한 통치기반을 마구 흔들어 댔다.
녹색파는 아나스타시우스를, 청색파는 유스티니아누스를 지지하고 신봉한다는 명분 아래 5년 절기마다 소요와 폭동을 일으켰다. 강도, 살상 등의 범죄가 난무하고 치안이 불안해졌다. 불법이 만연하고 행정관은 타락해갔으며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도둑이 들끓는 등 사회 질서가 무너진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 p.60-61 참조 )
권세 잡은 자들의 이어지는 복수 혈전. 그들의 세력을 등에 업은 무리들의 천 가지 사심私心을 하나로 응축시킨 폭동!
1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정치행태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숨이 막힌다...
아~ 앞서 로맨틱한 관점에서 소개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러브스토리가 순수한 미담으로만 전해질 수 있었다면 오죽 좋았을까! 참담하기만 하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