敬妻家 유스티니아누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세 5년째 되던 해(532년) 콘스탄티노플을 거의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니카 폭동'이 일어난다. 녹색파와 청색파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괴적 복수혈전을 벌이면서 "니카!(이겨라!"를 외친다.
걷잡을 수 없는 이 소요를 잠재우고자 황제가 먼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성난 군중들을 달래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두려워진 황제는 이들을 피해 은신처로 도망가려고 한다.
이때 황후 테오도라가 전면에 나서서 황제의 피신을 막는다.
"도망가는 것이 안전을 도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도 저는 도망가는 것을 떳떳하지 않게 여기겠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권위와 통치를 잃고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늘에 기도드리겠습니다. 왕관과 자의 없이 단 하루라도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요. 사람들에게 황후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의 빛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요. 오, 황제시여, 도망하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다면 금은보화가 있고 바다에는 배가 있으니 어려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에 연연하며 몸을 떨고 계시다면 필연코 비참한 망명생활에 이어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실 것입니다 저는 태곳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언을 고수하렵니다. 황제의 자리는 영광스러운 무덤입니다." (p66)
이렇게 당당하게, 단호하게 말하는 테오도라 앞에서 유스티니아누스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사랑하는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비굴했던 마음을 돌이켜 처신을 달리 한 유스티니아누스!
이때 그가 귀를 막고 목전의 안위에 급급하여 콘스탄티노플을 떠났더라면...
동로마 최장기(38년 재임) 통치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누가 내게 그의 특별함을 꼽아보라 한다면 바로 전 회에 썼던 내용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1. 신분을 초월해 과감한 사랑을 나누었다.
2. 아내를 세우고 존중해주었다.
3. 아내가 죽기까지 일편단심! 사랑의 맹세를 지켰다.
쓰고 보니 모두 부인에 관련한 내용이다.
사실 아직까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심층 분석해보지 못한 상태다.
이제 막 알아가는 그의 재위 역사에서 이건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인구를 계수할 때도 제외시켰던 여자와 아이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했던 한 여자를 제후로 세웠을 뿐 아니라 정치 파트너까지 삼은 유황제에게 이런 별칭을 붙여주고 싶다.
'6세기 최고 경처가敬妻家 황제!'
문득 속담 하나가 떠오른다.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렇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부인 테오도라의 말을 잘 들어서 국가적 위기를 넘기고~~
중국의 비단장사 왕서방(?)을 만나 탐욕과 사치의 세계로 유인하는 실크로드로 들어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