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실과 허
동고트왕 테오다투스의 최후
당시 이탈리아는 비굴했던 철학가 왕 테오다투스를 대신해 비티게스가 새로운 왕으로 세워지고 벨리사리우스와 맞서게 된다. 비티게스왕은 테오다투스가 죽인 아말라손타의 딸의 남편이다.
퇴위 군주 테오다투스는 도망가다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한 동족에게 살해당하고야 만다.
"사사로운 앙심으로 도망가는 그의 뒤를 쫓는 자가 있었다. 한 고트인이 자신의 사랑에 상처를 주었던 테오다투스를 플라미니아 가도에서 따라잡고, 사내답지 못한 비명을 질러대는 그를 죽여버렸다." p178
전후 설명 없이 끼어든 이 살해사건 현장의 서술에서 드라마틱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사랑의 상처를 입었다는 살인자는 혹 빼어난 지성과 미모의 여왕 아말라손타를 연모하던 이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인과응보!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이전 여왕에게 저지른 죄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었다.
위대한 영웅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실과 허
서기 536년 이탈리아를 침공, 제일 먼저 나폴리를 진압한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그 위세를 몰고 로마로 향한다.
나폴리에서 드러난 벨리사리우스의 관대함 때문인지 로마 시민들은 동로마 장군의 입성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고트족은 새 군주 비티게스 왕을 중심으로 로마시를 포위하고 공격과 방어, 후퇴를 반복하면서 교전을 치렀다.
이탈리아에서의 고트 전쟁은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위대한 면모를 다각도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신실함과 불굴의 용맹에 감탄하였다. 반면에 그의 어처구니없는 허점에 마음을 졸이고 탄식하기도 하였다.
빼어난 그의 용맹과 지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그가 품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교묘한 배신행위에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토사구팽! 시대를 불문하고 확인하게 되는 교활한 정치지도자들의 속성인 듯 여겨진다.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경계하고, 국외나 한직으로 돌리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고, 모든 공적을 가로채는 일... 고대부터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비상식적인 바람둥이 아내 안토니나와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부관계를 주목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엄마의 엽기적 애정행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들 포티우스와의 갈등 문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 이러한 막장드라마는 지금 이 시대에도 도처에서 일어나 가십 뉴스거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ㅠㅠ
로마시에서 포위 공격당한 그와 군대는 한때 위기를 맞게 된다. 절망하고 탈진한 동료들에게 불굴의 의지력을 나누어주면서 재 돌격을 응원하고 마침내 승전보를 울렸을 때! 그는 승리의 환호소리에 도취되기 전, 각 진지를 방문해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점검 원조한 후에야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프라이네스티네 성문에서 바티칸에 이르는 성벽에서의 몰리는 싸움에서 그는 적군을 향해 앞장서서 최초의 화살을 날렸다. 그의 강인함과 기민함은 야만족의 지휘관 중 맨 앞에 서 있던 자를 관통시켰고 이어서 궁수들과 함께 적군을 겨누어 승리의 쾌거를 올렸다. 가장 위험했던 날을 가장 영광스러운 날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불안해하는 와중에 공격과 수비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이 그의 머릿속에 분명하게 세워져 있었고, 앞장서 보여주며 따르게 했던 것이다.
이런 그를 따르는 자들은 사기충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솔선수범함의 용맹이 당시 로마시 청년들의 자발적 보조 군무를 이끌어냈고,
페르시아와 아프리카 전쟁에 동참했던 믿음의 동지인 노련한 고참병들의 헌신적 지원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5천 명의 고참병들이 10배가 되는 5만 명의 고트 군대에 맞서 승리하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
승승장구하는 그의 군대가 사기충천하여 자고 해 있을 때, 그는 병사들의 기개를 칭송하면서도 그들의 주제넘은 태도를 꾸짖었다. 그는 언제라도 패전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침착하게 대비책을 강구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재빠른 퇴각으로 로마시 성벽을 지켜냈다.
고트족 군대보다 무서운 기근에 대비해 시칠리아에서 옥수수를 들여왔고, 캄파니아와 투스카니에서 추수한 곡물을 휩쓸어가지고 왔다.
확고한 신념과 권위로 내부 혼란을 잠재웠으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수용하기도 했다.
“그의 공훈을 기록한 역사가와 옆에 서 지켜본 이들은 전쟁의 위험이 닥친 와중에도 벨리사리우스는 경솔함 없이 용감했고, 두려움 없이 신중했으며, 순간순간의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 가며 대처했다고 전한다. 가장 비참한 지경에 빠졌을 때도 희망적인 생각을 하거나 실제로 희 망을 찾아내어 활기를 잃지 않은 반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에도 신중하고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미덕으로 인 해 벨리사리우스는 과거의 군사 전략의 귀재들과 어깨를 나란 히 하거나 심지어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육상과 해상, 그 어디에서도 그의 군대는 승리했다. 그는 아프리카, 이 탈리아, 그리고 인접한 섬들을 굴복시켰다. 가이세리크와 테오도리크의 후계자들을 포로로 끌고 왔고, 콘스탄티노플에 적들 의 전리품을 가득 쌓아 놓았으며, 6년 사이에 서로마 제국의 속 주들의 절반을 되찾았다 명성과 높은 덕, 부와 권력으로 인해 그는 제국에서 상대를 찾을 수 없는 제일가는 인물이 되었다.” p210
불꽃 튀는 고트족과의 교전 중에도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순응하면서 불평 한마디 없이 본국과 전쟁터를 오고 갔다. 명목상 소환의 진짜 이유는 인기 절정의 벨 장군을 질투하는 황제의 시기심 때문이었다.
“질투심 어린 (황제의) 목소리만이 그가 중요한 인사로 대접받는 것이 위험하다고 과장하여 말했다. 황제가 자신이 벨리사리우스의 천재성을 발견하여 등용하였을 정도로 분별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정도로 만족했다면 참으로 좋았을 일이었다.” p210
고트족은 자신들의 불행한 왕 비티게스의 약한 모습과 벨리사리우스의 명성과 우세함을 비교한 끝에 비상한 제안을 한다.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고트족의 수도 라벤나의 요새와 우리들의 재산과 무기를 모두 바치겠다."
하지만 벨 장군은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있었다. 그의 신민이 되기를 갈망하는 고트족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멍청한 벨리사리우스! 왕이 되기보다는 노예가 되기를 선택하다니! ㅉㅉ"
저들 대표의 이러한 비난에도 그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의 충성된 장군의 기개와 충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범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장군의 면모를 보게 된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심이 깊었던 그였기 때문이었을까?
성경에서 언급된 사울 왕과 다윗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다윗을 질투해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의 모습이 겹쳐졌었다.
다윗은 고난을 겪으며 성숙함을 배우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워졌지만...
벨 장군의 경우는 그와는 다르게 여겨진다.
의로운 반전의 기회가 왔어도 비굴하게(?) 뒤로 물러나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추락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때로 분별없는 순종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몰고 와서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망치기 십상이다.
유황제의 철저한 배신과 박해에 어쩜 그리도 어처구니없이 묵묵히 당하고만 있었을까?
그러한 대책 없는 처신이 그가 정의하는 믿음이요 관용, 자비였을까?
로마 군대의 수장으로서 출중한 위엄과 기개를 자랑했던 그가 오로지 아내와 황제로부터 비상식적인 홀대를 당하고 한치의 의분도 품지 않은 채로 지낼 수 있었다는 데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를 존경하며 추종했던 많은 이들이 느꼈을 황망함, 낭패감, 치욕감...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말년에 그를 떠나고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섣부른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자포자기적으로 보이는 벨리사리우스의 인생 말기...
그저 상관과 아내를 잘못 만나 인생 망친 사례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비참한 그의 생애 뒤끝이 너무 황당하고 애처롭다...
이쯤 해서 잠시 이야기를 접고 황망해진 마음을 추슬러야겠다.
이어지는 아내 안토니나와 아들 포티우스를 비롯한 벨리사리우스의 마지막 주변 이야기는 아무래도 기운을 차리고 난 다음, 흥분을 가라앉히고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