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족의 불화
반달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아프리카를 점령한 동로마 장군 벨리사리우스!
다음은 고트족 왕이 다스리는 이탈리아 차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아프리카에 이어 동맹국인 이탈리아를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 여자이기에 슬픈 아말라손타 여왕 -
당시 이탈리아는 테오도리크왕의 뒤를 잇는 아들이 없어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었다.
테오도리크의 딸 아말라손타는 지성과 재능 및 지도자다운 지혜와 결단력을 지니고 있는 뛰어난 인재였다.
그러나 당시 고트족의 규례상 여자를 왕으로 세울 수는 없었다.
고트족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성의 통치라는 불경스러움을 받아들여야 했다. (p165)
테오도리크 왕은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우타리크를 사위로 삼았고, 둘 사이에 아들 아탈라리크가 태어났다.
아버지에 이어 남편이 죽고 아들의 후견인이 된 아말라손타는 어린 아탈라리크 왕을 대신해 섭정을 하였다.
지성과 미모뿐 아니라 남성적 활동력과 결단력, 자비로움 까지 갖춘 그녀는 그리스어 라틴어 고트어 모두 유창하고 우아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당시 지혜롭게 건전한 정책을 수행한다고 총리 카시오도루스가 호평할 정도였다.
그녀는 아탈라리크가 10세부터 학문과 기예를 열심히 배우고 익히게 했다.
그러나 이를 싫어한 왕자는 술과 여자, 거친 오락에 빠져 지내다가 병을 얻어 16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다.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데 실패한 여왕은 사촌 테오다투스와 왕권을 공유하기로 제안한다.
그러나 비열한 테오다투스는 아말라손타 여왕을 추방하고 혼자서 왕으로 즉위한다.
추방 당한 여왕은 목욕 중 원인 모를 질식사를 당하고야 만다.
아말라손타가 현재 한국으로 순간 이동한다면 새롭게 그녀의 위상이 정립될 수 있었을까?
여성이라는 편견과 제약에서 벗어나 소신껏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려는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명쾌하게
“옙! 물론이죠~”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ㅠㅠ
비열한 남자 테오다투스 왕
테오다투스는 탐욕적이면서 우유부단한 성격에 두려움이 많아서 멸시받는 자격 없는 군주로 평가되었다.
그는 자신도 아프리카 반달 왕국의 마지막 왕 겔리메르와 같은 처지가 될까 두려워하였기에,
허약한 군주의 모습으로 시칠리아 소유권 포기하고 동로마의 황제에게 3천 명의 고트족 지원군을 약속한다.
철학자이기도 한 그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사절과 나눈 대화에서 그의 소심함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황제가 이 조약을 인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될 것인가?”
“전쟁입니다.”
“그런 전쟁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렇습니다. 황제라면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자네의 진의는 무엇인가?”
“왕께서는 철학자이십니다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께서는 전체 로마 국민의 황제이십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다툼에 수천 명이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플라톤의 문하생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되겠습니다만, 아우구스투스의 후예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력으로 제국의 과거 속주들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마침내 테오다투스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면서 몸을 굽힌다.
“생활 보조금으로 4만 8000파운드라는 적은 액수를 받는 대가로 고트 왕국과 이탈리아를 포기하겠으니, 남은 여생을 철학과 농경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을 만끽하면서 지내게 해 달라!”
이 얼마나 비루하기 짝이 없는 지도자의 모습인가!
아말라손타를 음해하고 왕위에 오른 자가 기껏 이런 비굴함으로 왕권을 포기한다면...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할 불명예스러운 역사적 사건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무너지는 이탈리아 고트족의 모습을 내심 반갑게 지켜보는 유스티니아누스는 이탈리아 정벌의 명분을 얻고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또다시 앞장 세운다.
그는 손에 칼 한번 쥐지 않고 아프리카, 이탈리아, 페르시아를 얻는다.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오른팔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회에 이 위대한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탐구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