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충성! 도대체 당신은 왜?

전장의 영웅 벨리사리우스

by 아이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즉위했을 때는 서로마제국이 몰락하고 50여 년이 지난 뒤였다. 당시 야만인으로 불리던 고트족이 유럽에서, 반달족이 아프리카 북부에서 통치권을 누리던 상황이었다. 새롭게 동로마의 황제가 된 유스티니아누스는 서로마를 탈환 복구하고 싶은 야망을 어느 정도 품고 있었던 듯하다.

재위 초기 5년간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치르고 별 성과 없이 휴전하는 사이 반달족이 다스리는 아프리카 왕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 힐데리크 국왕의 통치권이 종교적 갈등 및 무어족과의 일전에서 패배로 인해 흔들리면서 새로운 세력자 겔리메르가 왕권을 계승하고자 반역을 꾸미게 되었다.

이것이 로마 군대에게 ‘아프리카 복안’의 명예로운 동기를 부여해주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힐데리크에게 호의를 품은 유황제는 힐데리크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아프리카 침공을 결심하게 된다.

이는 영토를 확장하고 무너진 서로마제국을 복구하는 초석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의 오른팔 요하네스 총리는 다음과 같이 근거 있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였다.


“카르타고를 육로로 가면 적어도 140일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바다로 가면 왕복 일 년이 꼬박 걸리는 곳입니다. 설혹 아프리카를 몰락시킬 수 있다고 해도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반도를 추가적으로 정복하지 않으면 그곳을 계속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또 다른 수고를 더해서 협정을 강요해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단 한 번의 재난만 닥쳐도 그 야만족들은 전쟁으로 지쳐 있는 이 제국의 심장부로 쳐들어올 생각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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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주교의 계시는 황제의 흔들리는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준다.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황제께서는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를 해방하려는 이 대담하고 성스러운 계획을 절대로 포기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군기 앞에서 행진하여 적들을 쫓아버리실 것입니다. 그 적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의견의 대립은 마치 성경 민수기의 장면을 재연해 놓은 듯하다.

모세가 가나안 정복에 앞서 정탐꾼을 보냈을 때 양쪽으로 엇갈린 의견이 나왔고

결국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의견에 따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같이 믿음직한 총사령관 벨리사리우스의 존재는 황제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나선 벨리사리우스는 아프리카와의 전쟁의 깃발을 올리고, 의도대로 3달에 걸쳐 아프리카 정복을 완수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역사는 순간의 선택에 따라 판도가 뒤바뀌어져 왔다.

황제가 의지하며 총애했던 요하네스는 황후 테오도라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직위해제당하고 망명지로 쫓겨나게 된다.

그가 비록 황후로부터 모함을 당하여 억울하게 물러난 것이라 해도

역사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의 부재로 인해 오히려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거침없이 영토를 넓히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 보듯 그는 영토확장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자였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흉포한 요하네스 라 평가를 받기도 했던 그를 대신해 황제 곁에는 지혜롭고 충직한 벨리사리우스가 있었다.

이 강직한 군사령관은 유황제의 왕권강화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벨리사리우스의 전장에서의 감동적 승리담을 소개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당시 그의 인기는 로마 시민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에 거주하는 민족들에게도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가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어준다면 기꺼이 복종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왕권을 넘보고도 남을 만큼 위대한 자신의 영웅적 존재감을 부각시키기는 커녕 어리석을 만큼 겸손하게 처신하며 끝까지 황제를 섬겼던 벨리사리우스!

그를 일반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behind story 가 있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벨리사리우스의 부관으로 그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기번은 그런 프로코피우스가 쓴 ‘전쟁사’를 많이 참고해서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밖에 프로코피우스는 저서 ‘비잔틴제국 비사’에서 황제를 비롯한 각 인물들의 각종 추문과 험담을 쏟아냈다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다분히 자신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는 편협적인 글을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일부 언급되고 있는 벨리사리우스와 그의 아내 안토니나, 아들 포티우스로 이어지는 엽기적 가정사!

수상한 안토니나를 쥐락펴락하는 교활한 황후 테오도라!

테오도라와 안토니나의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막장드라마 같은 역사이야기를 읽으며 온갖 상상과 추리가 일어나고 있다.

이참에 벨리사리우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그를 심층 분석해보고 싶어 졌다.

전장에서의 영웅적 존재감과는 상반되게 가정에서는 극도로 무기력했던 벨리사리우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담긴 내용만으로 섣불리 그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그를 향해 ‘왜?’를 던지느라 다른 이야기들은 다아 묻혀 버렸다.

애초부터 스토리 요약 중심의 ‘북리뷰’를 쓸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이 역사책을 읽으며 마음을 강하게 뒤흔드는 ‘그 무엇’ 이 있다면

그것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오우케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고 내일 다시 벨리사리우스에 대해 파고들어가야겠다.

그나저나 어쩌자고 이런 역사이야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는지...

이런 류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여인이 뒤늦게 할머니 되어 이 짓을 하고 있으니 원...ㅉㅉ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지금 너무 피곤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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