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질병의 역사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은 피곤해서, 다음날은 바빠서, 또 다른 날은 글이 잘 안 써져서...
이렇게 여러 가지 핑곗거리로 '로마제국 쇠망사 정리하기'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연대기적이나 책의 차례 중심이 아닌 '이슈'나 '스토리' 중심으로 써보려 한다.
역사이야기는 풀어서 쓰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섣불리 해보겠다고 시작했으니 중도하차하기는 스스로 부끄럽고.. 우선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편한 이야기를 쏟아놓는 창구라 여기고 주목한 바를 주절대고자 한다.
뭐~ 아직 구독자 수도 10명대인 곳 아닌가~
나이 들어 머리 회전도 잘 안되는데~ 스스로를 옥죄어 공연한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니다.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의 해였다. 온 세계가 움츠러들었다. '집 밖으로' 향하는 세상 탐구의 열정은 빗장 채워진 대문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포기하고 '집안으로' 되돌아가 벌러덩 누워버리고 말았다. '함께, 더불어'가 미덕이던 사회에서 1년 만에 '혼자, 스스로'를 모색하고 익혀나가야 했다. 이제 '코로나 전염병'은 우리의 삶을 마구 흔들어대며 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염병 대란이 서기 542년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재위 기간 중에도 발발하였다는 놀라운 사실! 그리고 이 전염병은 서기 594년까지 무려 52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니...
이후 14세기 중세시대의 흑사병 창궐에 이어 올해의 코로나까지 크고 작은 전염병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 이주하면서 옮긴 바이러스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다음의 구절에서 인간이 가축을 키우며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병원균'의 폐해를 되짚어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현상과 다를 바 없는 내용들이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는 매 시대마다 전염병의 진원지이자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습기 차고 덥고 탁한 공기 속에서 이 아프리카의 열병은 동물 성분의 부패, 특히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메뚜기떼에서 생겨났다. 유스티니아누스와 그 후계자들의 시대에 지상의 인류를 감소시켰던 이 치명적 질병은 세르보니아 습지와 나일 강의 동쪽 수로 사이에 있는 펠루시움 인근에서 처음 발생했다. 거기서부터 두 갈래 길 - 동쪽으로 시리아, 페르시아와 인도 제국에까지 퍼졌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서부를 관통했으며 유럽 대륙까지 퍼졌다. 발발 2년째의 봄, 콘스탄티노플 에는 3~4개월 정도 이 전염병이 돌았다. 그 진전과 증상을 의사의 눈으로 살펴본 프로코피우스는 아테네의 전염병을 기술한 투키디데스에 지지 않는 솜씨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간혹 병적인 공상이 만들어 낸 망상 때문에 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이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절망' 하며 보이지 않는 유령의 타격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침상에, 거리에, 일터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미열을 갑자기 맞이했을 뿐이다. 정말 경미한 열이어서 맥박도, 환자의 낯빛도 다가오는 위험의 신호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다음 날, 또는 그다음 날, 분비선, 특히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귀밑 분비선이 부풀어 오른다. 이러한 샅 임파선종이나 종양을 절개하면 콩알만한 크기의 석탄 같은 검은 물질이 들어 있었다. 그저 붓고 화농이 생기기만 하면 환자는 병균이 자연스럽게 방출되어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딱딱하고 마른 상태면 괴사가 급속히 진행되어 보통 5일 후에 죽게 된다. (4권 325쪽)
이 열병은 혼수상태나 착란 상태를 동반했다. 병자의 몸은 곧 닥쳐오는 죽음을 알리는 검은 고름집이나 등창으로 뒤덮였다. 발진이 생기지 않는 허약한 체질의 경우 토혈 뒤에 장의 괴사가 따랐다. 임신한 여자들에게 이 열병은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아이 하나가 죽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경우도 있었고, 감염된 태아를 잃고 어머니가 살아남은 경우도 있었다. 청년층이 가장 위험한 연령대였고 여성은 남성보다 감염률이 낮았다. 그러나 모든 지위와 직종의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전염 병에 걸렸다. 감염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대부분 말하는 능력을 잃게 되었으며, 그렇다고 이 질병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 도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의사들은 열성적이고 솜씨도 좋았지만 이 질병의 다양한 증상과 집요한 맹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같은 치료책이 상반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사망 또 는 회복 진단을 뒤집었다. 장례식의 질서나 묘지에 대한 권리 도 혼란에 빠졌다. 친구나 시종도 없이 죽은 사람은 길거리나 폐가에 내버려졌다. 정무관 하나가 뒤범벅이 된 시체 더미를 거둬들여 육로나 수로로 운반해 도시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깊은 구덩이에 묻는 일을 위임받았
. (4권 326쪽)
당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이 전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되었다고 하는데, 그에 관해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지는 않지만 다음의 대목에 눈길이 갔다.
황제의 회복과 관련해 좀 더 합리적이고 마땅한 원인은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박한 식사에 있었을지 모른 다. 그의 와병 중에 사회에 불어닥친 충격의 여파가 시민들의 행태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나태와 절망은 동로마제국 수도를 전반적인 궁핍 상태로 몰아넣어 버렸다. (4권 327쪽)
즉 평소의 섭생 습관이 질병을 물리치는 큰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유황제의 소박한 식사! 유념하며 따라 해야 할 미덕이라 여겨진다.
전염은 역병에서 빠질 수 없는 속성이다. 호흡을 통해 병균이 환자의 입에서 주위 사람의 위와 폐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코피우스 당대의 시민들은 단기간의 편파적인 경험을 통해 가까이서 얘기해도 전염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확신 때문에 냉정하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고독과 절망 속에 내버려 두었을 병자들의 간호에 친구와 의사들이 열성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투르크족의 운명 예정설과 마찬가지로 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 확신이 역병을 확대시켰음에 틀림없다. 로마 속주 간의 자유롭고 빈번한 교류에 아무런 제약도 내려지지 않았다. 페르시아부터 프랑스까지 여러 민족은 전란과 이민으로 서로 섞이고 동화되었다. 그리고 빈번한 교역으로 목화 꾸러미에 몇 년 간이나 잠복하는 전염병의 기미가 아주 먼 지역까지 수출되었다. 그 확산 경로에 대해서는 프로코피우스가 설명하고 있다. 즉 언제나 해안에서 내륙 지역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섬이나 산간 지역에도 결국 전염병이 찾아들었다. 초기 역병의 맹위가 비껴 간 지역들이라 해도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전염에 노출되었다. 그 미세한 독성을 바람이 퍼뜨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대기가 이를 받아들일 상태가 되지 않았더라면 한대 내지 온대 지역에 이르러 역병은 곧 사라졌을 것이다. 대기의 오염이 어찌나 일반적이었는지, 유스티니아누스 치세 15년째에는 전염병이 창궐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억제되거나 약화되지 않았다. 첫 번째 전염은 다소 약화되고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4권 327-328쪽)
당시 인류가 건강을 되찾고 공기가 다시 신선하고 깨끗해진 것은 52년간의 재해 시기(542년~594년)가 다 지나고 나서였다고 한다. 이 엄청난 질병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3개월 동안 5000명에서 나중에는 1만 명까지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가 텅 비었고,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 추수할 곡식과 포도나무가 그대로 땅에서 시들어 갔다고 한다. 전쟁, 역병, 기근이라는 삼중고가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국민을 괴롭혔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이 겪는 삼중고는 무엇일까?
공통분모인 '역병'을 제외한 나머지 2가지를 꼽으라면?
'집값 폭등'과 '정치 경제적 혼란'??
결국 다른 표현, 같은 의미인 전쟁이며 기근...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2020년이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먼 훗날 후손들이 기억하는 전염병 코로나 창궐의 시대는 1년 만인 2021년,
새로운 백신 개발로 인해 막을 내리고~~
1년 동안 '안으로' 움츠러든 인간들이 지루함과 나태함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도약해
광대한 우주의 한 별, 아름다운 지구인으로서의 연대감을 갖게 되길 소망해본다.
참~ 뜬금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