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보인과 로사몬드’ - 로마제국 쇠망사 45장 (1)
유스티니아누스 말년에 그의 허약한 정신은 내세에 대한 고찰에 전념하여 비천한 속세의 일은 소홀히 했다. 로마 시민들은 그의 장수와 긴 치세에 조바심을 쳤다. 그러나 생각 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를 소요에 휩싸이게 하고 제국에 내란을 불러올 그의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다 보면 이렇게 위트 있게 비틀어 표현한 데가 많다.
4권의 3/4을 할애했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세 이야기를 맺음 하면서 이렇게 문학적인 묘사로 독자의 사고를 자극시킨다.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이렇게 함축된 문장으로 넌지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를 짓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수많은 야만 민족들과 맞닥쳐 싸워 로마제국의 일부 고토를 되찾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 법률을 성문화 시키고...
3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치세했던 유스티니아누스를 파고들면서 느꼈던 그만의 소회라고 할 수 있겠다.
'허약한 정신'이라 표현한 이유는 끝까지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의 욕심과 질투심에서 기인한 듯하다.
나이가 들면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머리가 잘 돌아가고 손발이 빠른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응원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황제가 그렇듯 그는 늘 자신이 중심에 있었다. 쇠락해가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안달 박달 움켜쥐며 사는 모습! 그것을 기술하는 기번은 역사학자로서 지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에둘러 평가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음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떠났고 궁정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유스티누스 2세 >
아들이 없는 유스티니아누스였기에 많은 조카들 중 한 명을 세워야 했고 그중 유스티누스가 신하들로부터 세움 받았다. 그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사망 소식에 놀라움과 슬픔, 적절한 겸허함을 표시했다. 곧이어 원로원의 안내에 따라 조용하고 신속하게 대관식을 치르었다.(565년 11월)
그가 왕위에 올라 제일 먼저 한 일은 선왕의 '채무 상환 지급'이었다. 희망을 잃고 있던 유스티니아누스의 채권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제왕으로서의 신의와 관대함을 나타내는 아주 멋진 출발이었다.
그러나 유스티누스 2세의 연대기는 국외에서의 치욕과 국내의 비참함으로 요약된다. 동로마제국은 서쪽으로 이탈리아의 상실과 아프리카의 황폐화, 동쪽으로 페르시아 군의 침략에 시달렸다. 국내에서는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부자들은 재산에 대해, 빈민들은 안전에 대해 염려했다.
순수하고 자비로운 성품의 황제는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하고 후계자를 물색했다. 황후 소피아의 추천으로 친위대장 티베리우스가 세워졌다.
양위식에서 유스티누스가 선언한 회개와 당부의 언어는 너무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 나는 왕관의 광휘에 눈이 멀었소. 그대는 현명하고 겸허하게 처신하시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 명심하시오.... 국민을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군대의 애정을 구하고 규율을 유지하시오.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빈자들의 필요를 구제해주시오. (417쪽)
이후 유스티누스 황제는 조용히 은거했고 4년 후(578년 10월) 후왕의 효심과 감사를 받으며 죽었다.
< 티베리우스 2세 >
티베리우스는 외모가 출중했다. 소피아 황후의 기대(그녀 자신이 발탁한 잘 생긴 새 황제의 후견인이자 황후로 세워질 것)와 달리 자신의 아내 아나스타시아를 황후로 세웠고, 유스티누스 황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역시 순수하고 관대한 황제였다.
궁정에서는 상냥하고, 교회에서는 신심이 두텁고, 판관의 자리에서는 공평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진짜 보물은 인색하지 않은 검약의 실천과 쓸데없는 지출에 대한 경멸이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인 이 애국적인 군주가 영원한 축복으로 존재했다면 동로마제국 국민들은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420쪽)
그러나 유스티누스 사후 4년도 안되어 이 뛰어난 새 황제는 불치의 병에 걸리고 말았다.
불운한 티베리우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뛰어난 무용과 지휘능력을 보인 마우리키우스를 후계자로 택하여 자신의 딸과 함께 제국을 넘겨주었다.
< 마우리키우스 >
마우리키우스는 43세의 원숙한 나이에 제위에 올라 동로마제국을 20년 이상 다스렸다.
그는 "거친 민주주의를 몰아내고 이성과 미덕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귀족정치를 확립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통치는 대부분 선황 티베리우스의 원칙과 본보기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3명의 황제를 이야기하면서 맥 빠지는 느낌은 왜일까?
아마도 오랫동안 그를 둘러싼 제국사 이야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나름 훌륭한 제왕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왕의 압도적 존재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짧게 다루어진 점이 좀 아쉬웠다. 다음 장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롬바르드족 왕 알보인과 게피다이족 왕비 로사몬드
당시 이탈리아 지역은 주변 여러 민족들의 왕들이 서로 각축전을 벌이며 세력을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그 배경과 역사에 관해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학습자로서 배우는 과정이니 이렇게 써내려 가다 보면 차츰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키워지리라 믿는다.
새로운 황제 시대를 맞이하는 시점에 아바르족의 사절단이 비잔티움을 찾아온다. 유스티누스 황제의 단호함에 위축된 아바르족은 롬바르드족과 동맹을 맺어 명맥을 유지했다.
당시 롬바르드족 왕 알보인의 거친 무용담이 흥미를 끈다.
게피다이족 왕자를 죽인 알보인의 거침없는 행보가 살아남은 형제 왕자 쿠니문드의 가슴을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게 했다. 한편 원수 알보인은 바로 그 복수심 가득한 쿠니문드의 딸 로사몬드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당근! 경멸적인 태도로 거절을 당한다.
치욕을 당한 자는 꼭 앙갚음을 다짐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설욕전!
알보인은 복수를 다짐하는 가운데 명분을 내세워 아바르족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아바르족의 무리한 동맹 체결 조건까지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연합된 군대가 게피다이를 쳐들어가 로사몬드의 아버지 쿠니문드를 죽이고, 그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들어 알보인에게 바친다. 그리고 마침내 알보인왕은 쿠니문드의 딸 로사몬드를 차지한다.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동맹 침략전은 잇따른 성공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정복의 야심이 불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알보인의 기개와 달변으로 더욱 승승장구해진 롬바르드족과 동맹군들! 이들은 미덕과 악덕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수장 알보인에 대한 애착과 신의로 꽁꽁 뭉쳐졌다.
566년 시작하여 570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한 롬바르드족!
마침내 롬바르드족 왕 알보인은 이탈리아의 새로운 수도 파비아로 입성하고 통치하게 된다.
창건자의 통치는 화려하지만 일시적이었다. 새로운 정복지의 점령을 완수하기도 전에 알보인은 가신의 반역과 여자의 복수의 제물이 되었다.
베로나 부근 궁정의 연회에서 술에 취한 알보인은 쿠니문드의 해골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그 해골잔에 술을 채워 부인 로사몬드에게 권한다.
"이 잔을 왕비에게 가져가 자기 부친과 함께 기뻐해 달라고 내 이름으로 요청하라."
슬픔과 분노의 고통 속에서 로사몬드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잔에 입술을 대면서 이 모욕은 반드시 알보인의 피로 씻어낼 것이라고 조용히 저주하는 것이었다.
결국 알보인은 로사몬드의 공모자가 된 그의 가신 페레데우스의 창에 찔리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명실공한 통치자가 되기 바로 일보 직전에 말이다...
로사몬드는 롬바르드족 중 가장 용맹한 장수 가운데 한 명인 페레데우스에게 이 음모에 가담해 달라고 압력을 넣었으나 다만 비밀을 엄수하겠다는 약속만 받아 내는 데 그쳤다. 이에 로사몬드가 사용한 유혹의 방법은 그녀가 명예와 사랑 모두에 대해 수치스러울 정도로 무감각했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페레데우스를 그가 사랑한 자기 시녀의 방으로 불러들이고 어둠과 침묵을 가져올 구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마침내 페레데우스가 롬바르드족의 왕비를 취했음을 알리고, 대역죄에 해당하는 이러한 간통의 결말은 그 자신 또는 알보인의 죽음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로사몬드의 희생양보다는 공모자가 되기로 했다. 그녀의 담대한 기질에는 두려움도 회한도 없었다. 왕비는 좋은 기회를 기다리다 왕이 포도주를 마시고 낮잠을 즐기기 위해 물러난 순간을 곧 포착했다... 궁전의 문은 닫혔고 무기는 제거되었으며 시종들은 모두 물러가게 했다. 로사몬드는 다정한 애무로 그를 잠에 빠지게 한 뒤 방문을 열고, 내키지 않아 하는 페레데우스에게 당장 계획을 실행에 옮기라고 종용했다. 처음 경계심을 느꼈을 때 알보인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검을 빼어 들려했으나 이미 로사몬드의 손으로 칼집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413쪽)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 혈전 에피소드! 이렇게 황당한 막장드라마가 로마사에 또 한 번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복수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파멸하기는 매한가지! 악은 또 다른 악을 부르게 마련인지라 로사몬드도 자신이 만든 음모의 함정에 빠져 결국 따라 죽게 된다.
베로나의 총독 롱기누스는 알보인의 미망인이 가진 매력과 재산에 매우 기뻐했다. 그녀의 현 상황과 과거 행동을 보면 어떠한 음탕한 제의라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로사몬드 또한 아무리 쇠퇴하고 있는 로마 제국이지만 일국의 왕과 같은 대접을 받는 대신인 그의 정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헬미키스(로사몬드의 애인)는 목욕을 마치고 나와 로사몬드의 손에서 독이 든 음료를 받았다. 이상한 술맛과 그 신속한 효력, 로사몬드의 성격에 대한 경험으로 그는 자신이 독살당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헬미키스는 단검을 그녀의 가슴에 겨누고 컵에 남아 있는 것을 전부 마시게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그녀가 저지른 악행의 결과를 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죽고 말았다. (414쪽)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유지해가는 동로마제국의 이탈리아는 주변 민족들 사이에서 차츰 힘을 잃어가게 된다. 동로마제국의 쇠퇴와 나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