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중
#김승옥의 단편소설을 읽다가 자꾸 마음이 딴 데로 간다. 글의 스토리에 공감하기에 앞서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중 마지막 장이다. 골치 아픈 회사 일거리들을 잠시 내팽개치고 자신의 고향 무진으로 와 보내는 한 젊은 사업가의 며칠간의 일탈 행위.. 그것과 결별하는 이 마지막 모습이, 심리가 독자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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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 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 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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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이기에 다수의 영화를 찍고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했던가보다.
그가 관여했던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다.
참고로 그는 1981년 종교적 계시를 받는 극적인 체험을 한 후 신앙생활에 몰두하면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 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