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딸-추억을 소환하다
드디어 첫 번째 손주가 태어났다.
2020년 02월 02일 일요일 오후 3:05
그 시간에 할머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2시 예배를 마무리하는 찬송을 드릴 때였다.
이 땅의 잊혀지고 스러져가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소외된 사람들... 비록 인간에게는 잊혀질지 몰라도 하나님은 꼭~ 기억하실 것이라는 그 말씀을 되새기며 저릿한 심령이 되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못지않게 스러져가는 생명이 많다는 것을... 그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훔쳤다...
바로 그때 우리 손주- 나의 혈육, 새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아침 일찍 딸과 전화하지 못했다.
어젯밤 늦도록 만삭인 딸이 아파트 로비에 있는 헬스센터에서 사위와 함께 걷기와 짐볼 운동을 했던지라
피곤해서 늦잠 잘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고, 묵상의 글을 쓰고 기도를 하고, 아침식사하고, 교회 갈 채비를 하고...
혹시나 해서 안부 문자를 남겼는데 답이 없었다.
그래서 작은 딸에게 문자 했는데 역시 무응답...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겠지~” 하며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3시 20분쯤 예배 마치고 몇몇 교우들에게 딸의 순산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3시 40분, 사위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진통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아닌 출산 소식이었다...
반가우면서도 안타깝고 아쉬웠다.
새벽 3시쯤 양수가 터진듯하여 병원으로 갔다고..
이후로는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고...
어차피 남편 이외에는 병원 출입 및 면회가 금지된 터라 알아도 곁에 있지 못할 것이기에
부모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나름의 배려였던 것이다.
진통이 시작하고 나서 근 12시간 만에 출산하였으니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 시간 동안 엄마는 편안히 밥 먹고, 예배드렸는데...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마를 배려하는 딸...
너무도 독립심 많고 속 깊은 딸이 늘 대견하면서도 안타깝고 속상하고 서운하고... 그렇다.
결혼할 때도, 이사할 때도, 출산 준비할 때도...
심지어 출산하는 날까지!
언제나 늘 엄마 아빠의 손길을 요구하지 않고 제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습하였다.
오늘 새벽 병원 가면서도 엄마가 아닌 동생에게 전화하면서~
엄마 아빠에게는 새벽부터 오시지도 못하는데 공연히 걱정하신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단다...
출산소식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 면회는 전면 금지!
딸과 손주는 보지도 못하고 사위만 보고...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다가 근처 백화점에서 이런저런 먹거리 사서 사위 편에 건네줄 뿐이었다.
영상통화로 본 딸의 얼굴은 붓기로 퉁퉁 부어있었다.
“이렇게 힘든 출산을 울 엄만 두 번이나 했네~ ㅎㅎ”
“**오빠가(사위) 엄청 고생했어~ 나 계속 마사지해주고~ 함께 호흡해주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그렇게 큰 출산의 고통 앞에서도 자신보다는 주위 가족들을 세워주고 챙기는 딸의 그 여유와 자애스러움이...
왜 이리도 엄마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지....
하나님! 이 허물 많고 부족한 엄마에게 과분한 자녀, 소중한 가족을 주셨으니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귀합니다.
이는 저의 관심과 영역이 저의 가족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있지 말고~
세상 가운데 궁핍한 영혼을 향해 손과 발을 뻗으라는 뜻인 줄 알고 새기겠사오니~
주여! 세상 다하는 날까지, 건강 허락하는 그날까지
당신의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 되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저의 육신의 가족들! 먼 후대까지 책임져주실 것을 믿고,
저들을 향한 근심과 염려는 이제 내려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좋으신 나의 주님! 아멘!!
(2020.02.02)
이렇게 셋이 된 딸의 가족은 지금 싱가포르에 있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출산하고, 이사하고..
사위의 지사 발령으로 출산 후 한동안 떨어져 있었다.
아기 100일 지나고 나서야 딸과 손주가 출국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근 6개월 동안 손주와 더불어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로 자유롭게 활동을 못하는 처지를 탄식할 틈도 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딸의 식사를 챙기고 손주 돌보고 집안일하고...
손주 돌이 다가온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매일 페이스타임으로 영상통화는 하지만...
그래도 한자리에서 축하해주지 못하는 처지가...
지금 엄마가 된 딸의 돌잔치때도 그랬었다.
외국에서 일가친척 없이 혼자 치르었었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기에
호사스럽게는 못했지만, 한국인 이웃들의 도움으로 제법 예쁜 돌상을 꾸몄었다.
우리 딸도 그렇게 하겠지?
문득 웃음이 나온다.
“어쩜 넌 살아가는 모습도 이렇게 엄마를 쏙~ 빼닮았니?”
돌상차림을 이렇게 이웃 또래 엄마들과 더불어 셀프로 만들었었다.
앞줄 장식 - 왼쪽부터 캔디(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미국에 저런 색깔의 캔디가 있었다) 마시멜로우(식용색소로 염색했다 ㅎㅎ) 이스터데이 알 캔디(꽃 대용으로 꽂이 했다) 오레오 쿠키. 웨하스 (색깔로 패턴을 만들었다)
가운데 있는 어린양은 이웃분이 만들어주신 케이크인데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왔었던 기억이... ㅎㅎ
지금 봐도 넘 훌륭하다.
그리고 백설기는 내가 직접 만들었는데~
어떻게 했었는지 지금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ㅠㅠ
34년 전의 나!
참 열심히 살았구나~~ ㅎㅎ
딸이 혼자 꾸미게 될 손자의 돌상차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