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소설
< 1985년 12월 12일 >
이제 며칠 후면 어머님과 이별이다.
신랑은 끝내 미국 유학행을 결심하고 어머님을 설득시켰다. 아니 설득이 아닌 통보였다.
어머니는 유학을 준비하는 신랑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었다. 유학비용에 보태어 앞으로 투자가치가 높은 대치동 미도아파트 50평형을 사두자고 하셨다. 만삭의 신부 데려가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저냥 여기서 살자고.
한국에서 대기업체 직장인으로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귀가 솔깃해진 나와는 반대로 신랑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성탄절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배가 불러올수록 방광을 자극해서인지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니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도 어머님 계신 방문 틈 사이로 실낱같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무심히 지나쳤던 많은 날들이었지만 이제 어머님을 혼자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 앞에 시린 가슴이 되어 똑똑 방문을 두들겨보았다.
"어머님~ 안 주무세요?"
땡땡 자정을 알리는 괘종시계 종소리가 고요한 밤을 가르고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어댄다.
어머님은 이부자리 옆에 군용 담요를 깔아놓고 화투로 패를 맞추어보고 계시는 중이었다.
이런 허망한 게임에 애당초 관심이 없지만 부엌에서 어머님 좋아하시는 청주와 곶감, 유과를 챙겨 들고 어머님 앞에 마주 앉았다.
"어머님 여기 광이 3개가 나란히 몰려있네요. 내일 재수 좋으시려나보다."
"왜 자지 않고? 임산부가 피곤하면 안 되는 거야."
"괜찮아요. 어머님이야말로 거의 매일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니 건강에 안 좋으세요."
"늙으면 잠이 없어지는 거지. 괜찮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그나저나 니가 혼자 미국서 애 놓을 생각을 하면 당최 불안하다..."
어머님의 염려에 대답이 궁색해진 나는 방 한쪽 벽에 걸린 아버님의 사진을 보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근데 어머님, 제가 엊그제 꿈을 꾸었는데요. 아버님이 큰 창고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서성거리는 저를 부축해서 밖으로 내보내 주셨어요. 너는 여기 있을 필요 없다면서요... 뵙지도 못한 아버님이지만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나 봐요. 호호~"
"아이구~ 그래? 니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우리 며느리라고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을까.. 아마 내가 샘이 날 정도였을 거다."
어머님은 당신의 남편 사망 당시로부터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버님과 관련된 과거사를 말씀하시기 시작한다. 수차례 들은 같은 이야기를 늘 새로운 듯 추억에 취해 반복해 회고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부쩍 처연해 보인다.
대낮의 우아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백설공주에게 찾아간 왕비처럼 파파 할머니로 변해 샛소리로 끊임없이 수다를 떠시는 어머님...
그녀의 이부자리 머리맡, 이 빠진 사기대접에 담겨있는 황금 틀니가 스탠드 조명 아래 반짝거리고 있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혼자 남하하셔서 친인척이 없으시다 했다.
개성의 명문 호수돈여고를 졸업하고 교사생활도 하셨다는 어머님과 달리, 당신과 무려 15살 차이 나는 아버님은 변변한 학교에 다니지 않으신 듯했다.
"어떻게 아버님을 만나셨어요?"
"응~ 큰오빠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셨는데 거래처 사람이었어. 오빠의 권유로 짝이 되었지."
하나의 질문에 늘어지게 사설이 붙는 어머님의 대화 습관과 달리 아주 간략한 대답이었다.
뭔가 부족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의 나를 눈치채시는 듯 약간의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애기 못 낳는 여자라 아버님 같은 착하고 너그러운 사업가에게 딸을 주셨다는 것'이었다.
'일 년에 기껏해야 한두 번밖에 월경을 안 하니 아이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염려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양에서 홀로 내려와 독립하신 아저씨뻘 되는 남자와 결혼했고, 다행히 8년 터울로 아들 둘을 얻어서 살아온 것이라고...
그날 처음으로 남편 없는 한 여인의 외로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불현듯 어머님을 꼬옥~ 끌어안아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는 인습적 거리두기로 통제받는, 내 남편의 무덤덤한 엄마일 뿐이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