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들

기술철학

감정은 내 경계를 지켜주는 섬세한 센서다. 그 감정의 뿌리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내가 감추고 싶고, 버리고 싶었던 나의 일부다.

이를테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나의 유치함,

쉽게 상처받고 뒤돌아서는 나의 연약함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를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그 그림자다.

그림자가 없다면 나는 불편한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없겠지만,

동시에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고유함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경고하듯,

나는 나만의 길을 걷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기준에 맞춰 대량 생산된 규격품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그림자를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껴안는다.

그 어둡고 축축함 속에서 진짜 ‘나’가 태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정을 제거하려는 기술, 감정을 예측하려는 알고리즘이 범람할수록, 나는 더 깊이 나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결국 기술이 아닌, 나의 그림자와 나의 감정이 나를 인간으로 남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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