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낯설게 보기

어려울 땐 힘을 빼고 다시 바라봐요

by 속눈썹

정리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신박한 비움 커뮤니티'는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게 (다른 사람과의 템포를 중요시하는 동양인답게-) 부담 없이 한 구역씩 정리하고 일주일 간 유지하다보니 미션이 쉽다. 이러다 조금씩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닐까하는 기대도 생긴다. 무엇보다 나의 사소한 행동이 지지받는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다'는 전제로 살아온 내게는 이런 반응들이 의외로 감동적이다.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제시하거나 흥미로운 걸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역시 주부집단의 호들갑스런 따뜻함이 (때론 그런 게 버겁지만 여기선 꽤나 긍정적이다.)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을 응원하듯 신나게 한다.

정리인증으로 정리구역을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데, 신기한 게 사진을 찍으면 나도 모르게 편집에 들어간다. 미디어노출세대라 그런지 현실 속의 불필요함은 인지 못하면서 네모난 화면 속의 불필요함은 너무 정확히 캐치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보고 정리를 더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걸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 제 3자의 눈으로 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내겐 너무 애착 있는 의자라도 3자의 시선으로 보면 ‘굳이 저 의자는 용도가 없는데?’ 하는 낯선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잠시라도 낯설게 본다는 건 정리정돈에 좋다.

다른 방법으로 손님을 초대하면 집의 낯선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손님들 대게는 집에 대한 험담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집의 장점을 찾아내 들려주는데, 그런 손님의 시선이 집을 낯설게 보는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 집은 상부장이 없네요. 상부장이 없으면 어때요? 저희 집도 고민하고 있어요."

"체리색 몰딩이 따뜻한데. 이 집이랑 너무 잘 어울려."

"욕실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니니 너무 좋네요!"

평소에는 그저 그런 살림이라 평범했거나 오히려 싫증나던 구조와 모습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들으면 또 다르게 보이면서 집에 애정이 생긴다. 그리고 그 애정이 집을 정리하고 단정하게 가꾸는데 에너지가 된다. 사람들이 예의가 발라서 아직까진 '창고방이 전쟁터네요!'같은 팩폭(팩트폭격)을 날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우리집에 사람을 초대하지 못했을 것 같다. 경험상 아무리 집이 개판이라도 사람들은 창의성을 발휘해 집의 장점을 찾아낸다. 집을 낯설게 보고 싶다면 한 번 해보시길.

또 사람인지라, 사람을 초대하면 자연스럽게 청소를 한다. 이건 무슨 본능일까 만은 적어도 땅에 떨어진 쓰레기는 줍고 퀘퀘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환기는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좀 더 고개를 숙여 널어진 장난감도 통에 담고 말라비틀어진 걸레에 물을 적셔 이곳저곳 닦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청소삼매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정리정돈이 되고 손님이 오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절반밖에 청소를 못했더라도 그건 사람을 초대하지 않았다면 아예 없었을 성과이니 얼마나 효과적인가!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 손님이 드나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이 적응 안 됨...)


비슷한 방법으로 랜선집들이를 하는 것도 괜찮다. 이는 약간 개방적인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데 온라인 특성상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봤자 블로그 조회수는 10을 넘어가지 않지만...) 자신의 SNS에 집사진을 올리는 것이 쑥스러우면 단순한 물건이나 셀카를 찍어도 된다. 다만 우리집 배경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도록. 그러면 신경 쓰여서 정리하게 된다. 정리가 잘되어 있으면 오히려 집만 소개하는 배짱이 나올 수도 있다. 신기한 건 사진을 게재하기 직전에도 안 보이던 낯선 시선이 온라인에 업로드 하는 순간 생겨난다. 스스로 타자화되어 내 집을 바라보는 거다. 그런 경험은 약간 오묘한데, 효과가 있으니 자기표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좀 더 안전한 공간에 표현하고 싶다면 네이버 카페인 <미니멀라이프카페>를 추천한다. 여기는 정말 많은 미라인들이 있는데, 미라인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보니 각양각색의 미니멀라이프 취향이 있다. 그래서 집사진을 올리는 것은 나의 ‘미니멀라이프취향은 이래요.’라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럼 다양한 댓글이 달린다. 대부분 취향이 맞는 미라인들이 달아주기 때문에 크게 상처받을 일이 없고, 너무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인지적 과부하를 느끼는 순간 '포기'한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면서도 자주 포기했던 건 목표도 동기도 방법도 모두 명확한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과부하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위 방법처럼 사진을 찍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것, SNS나 커뮤니티에 인증을 올리는 것은 평소 정리정돈의 목표와 다른 소기달성목표이고 또 그에 따른 피드백은 평소 동기부여와 다른 동기부여를 주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낯설게 보인다. 그렇게 뭔가가 낯설게 보이면 그 때부터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 그게 아마도 창의성?

이까짓 것 뭐!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마음으로는 너무 부담스러워했다는 걸 인정하기로 한다. 나는 미니멀라이프 이까짓 것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부르짖었지만- 그게 얼마나 필요하고 그걸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고, 그걸 하면 뭐가 좋은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간 읽은 미니멀라이프 관련 도서와 커뮤니티의 영향이 크다.) 오히려 시작을 못하는 과부하를 겪었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마음을 많이 덜어내고자 미니멀라이프라는 명사는 버리고 그냥 '정리정돈하는 삶'이란 좀 더 친근한 언어를 쓰기로 했다. 그럼 앞으로 정리정돈 진짜 못하는 사람이 정리정돈을 할 수 있었던 이야기로 가닥을 좀 바꿔보자. 훨씬 마음이 가볍다. 나의 정리정돈 도전기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해피앤딩이 될 때까지 달릴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정리정돈이 잘 안되거나 막힐 때면 낯설게 보기를 떠올리며 내가 너무 경직된 시선으로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꾸준한 실천에는 성실도 중요하지만, 매너리즘을 타파할 수 있는 창의성도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이 쓴 정리정돈하는 이야기

아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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