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타이밍

아무래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by 속눈썹

"나는 헤어질 때가 너무 어색해."


친구가 말했다. 본인은 전화를 끊을 때, 친구 집에서 나올 때, 혹은 카페에서 일어날 때가 항상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다고.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순간들이 어색했던 때가 있었는데(일어날 타이밍을 몰라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회식이랄까), 언제부터 의식하지 않게 된 걸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이 어색하지 않다. 살면서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은 탓에 관성이 생긴 걸까? 만남을 하면 수다가 많은 편이라 비교적 사람을 오래 보는 편이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는 양해를 구하거나 미리 헤어질 시간을 정하고 만나다보니 헤어지는 어색함을 겪어본지 오래다. 그렇게 사람과 헤어지는데 능숙한 내가- 물건과 헤어질 때는 문득 친구의 고백이 떠오른다.


'지금 헤어져야 하나. 좀 더 기다려야하나. 크게 사용한 기억이 없는데...그래도 언젠가 또 찾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오래 썼는데. 아직 멀쩡한데. 오래 쓰면 환경호르몬 나오는 거 아니야.? 그거 다 언론플레이라던데. 아 그래서 지금 헤어져 말아?'


오늘 잡동사니를 정리하면서 내면의 자아가 투닥투닥 부딪히는 소릴 들었다. 특히 화장품. 화장품은 정말 난해하다. 365일 중에 5일 정도 쓰는 화장을 위해 리무버와 오일, 립스틱, 파우더,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눈썹집게 같은 걸 보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일 년에 5일 화장하는 솜씨로 화장이 늘리는 만무하고- 늘지 않는 화장이지만 그 조차 하지 않으면 사회적 활동에 욕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이효리처럼 마인드가 확실히 강한 것도 아니고 또 없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렇게 물건과 헤어지는 순간에 갈팡질팡 자주 흔들린다. 나는 언제쯤 이런 부차적인 것에 신경 끊고 살 수 있을까.


또 치킨쿠폰을 11개나 발견했다. 3개 3개 5개 전부 다른 매장이란게 함정이지만. 치킨쿠폰의 부질없음을 느끼고 쓰레기통에 작렬이 버리는 게 내 미니멀라이프의 철학이건만, 나는 또 고이 모아 냉장고 옆에 붙인다. 아- 다음에는 5개 치킨매장부터 시켜야겠구나 하면서. 내가 봐도 코미디다.


어린 나의 증명사진과 대학교 졸업식날 찍은 플라로이드 사진도 찾았다. 그동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숱하게 찍었던 20대 시절 디지털 사진은 싸이월드가 모두 삼켜먹어 ‘냠-’ 하고 사라졌는데, 유물처럼 찍어둔 사진 하나가 남아서 옆에 진득히 붙어있는 걸보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인생에 뭐가 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정리정돈도 사람마다 개성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열정적으로 정리하고 화끈하게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꾸준히 버린다. 뭐가 옳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각자 타고난 성격에 맞게 정리정돈을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나의 이별은 그동안 어떤 모양이었나? 지난한 이별의 변천사를 돌이켜본다. 하아-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지. 이별하면 그 여파가 너무 길고 오래가서 차라리 만남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후회하는 게 일상이었다. 한 번 마음에 들어온 것은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쉬이 떠나보내지 못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좋게 말해 잔정. 소위 집착과 미련이 내 이별의 개성이었다니.


물건과 이별하는 타이밍을 아는 건 아직도 어렵다.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물건을 오래 쓰는 게 흠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흠이 된 것 같아서 서글프기도 하다. 양말을 기워 신으면 궁상이라던가. 나는 새것을 쫓는 문화가 세련되어 보여 좋지만 따라가긴 버겁다. (무엇보다 얼리어답터는 돈이 많이 든다!) 이토록 물건의 쓸모에 집착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지만 일단은 인정한다. 그러자 새로운 알고리즘이 생성되었다.


나는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

물건 기능의 하자는 없지만 개인적 쓸모가 다 한 물건이다 ->

누군가 물건 기능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

물건이 누군가의 쓸모가 될 수 있도록 주인을 찾는데 협조한다.


아직 쓸모를 다하지 않았다는 말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많은 물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리라 다짐해본다. 이렇게 마무리하면 그래서 결국 그런 이유로 또 못 비웠냐고 나의 초자아가 야단칠지도 몰라서 덧붙이는 사족인데.... 뭐 이러다가 내가 변하거나, 물건이 변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하리라 믿는다. 그동안의 숱한 이별이 마치 태풍처럼 다가와 머물러도 결국 스치고 사라졌던 것처럼. 이렇게 자기만의 이유를 발견하고 문제해결의 방법을 모색해 실천하다보면 언젠가 맑게 게인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아이만 부모가 믿는 만큼 크는 게 아니다. 나도 내가 믿어주는 만큼 클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성장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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