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이 난리났네 난리났어!

비닐의 역사를 아세요?

by 속눈썹

오늘은 싱크대 서랍장을 정리했다. 서랍이란... 우리집만 그런 건 아니겠지. 서랍을 닫으면 깔끔한데 여는 순간 번뇌가 가득하다. 어쩜 자질구레한 것들이 그리 많은지. 사실 주방의 상징적이지만 도저히 쓰이지 않는 주방 물건들은 모두 서랍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절대 입고 요리한 적 없지만 심혈을 기울여 산 앞치마, 매번 계란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버리지 못하는 거품기, 우아하게 라떼를 먹고 싶어서 구입한 전동거품기, 매일 쓰는 컵에 한 번도 자리를 내준 적 없는 티코스터, 레몬을 산 적이 없어 포장도 안 뜯은 레몬즙짜개 등등... 쓸 것 같은데 묘하게 안 쓰이는 물건들이 진짜 애매하다. 나 이것들을 비울 수 있을까....

전동거품기는 어느 날 남편에게 녹차라떼를 만들어주겠다며 호기롭게 스위치를 켰다가 갑자기 우유거품이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결국 남편을 슈렉으로 만들었던 잊지 못할 추억의 제품이기도 하다. (웰컴투동막골의 팝콘씬처럼 녹차라떼가 분수처럼 터지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목이 높은 컵에서 쓰라는 사용설명서는 나중에 보았다.) 4000원 남짓하는데 배송료까지 붙어서 7000원 정도에 산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뻔했던 그 전동거품기가 나는 홈카페의 혁명템으로 여겨졌다. 비록 스팀기는 없지만 렌지에 데우고 거품기로 거품을 내주면 스팀우유가 별거냐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형태적으로 완벽을 추구했지만 과정의 귀찮음은 미처 보지 못한 일개 미련한 중생이었다.

생각보다 비닐을 많이 모으고 있었다. 비닐은 크게 재활용봉투, 지퍼백, 검은비닐, 하얀비닐로 나뉘어진다. 비닐을 바로바로 버리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비닐을 대게 한 번 더 쓰고 버리는 쪽이다. 재활용봉투는- 일단 쓰임새가 확실해서 버릴템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천덕꾸러기처럼 서랍 뒤쪽에 짱 박혀있는 게 4개나 있었다. 얼마나 봉투가 많으면 서랍 뒤편으로 넘어가버렸을까. 고로 재활용봉투가 안 보인다는 말은 정리정돈할 한계치에 왔다는 말이다. 검은비닐은 재활용불가 비닐이기때문에 쓰레기로 분류해야되는데,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간이쓰레기봉투로 쓴다. 그래서 우리집 종량제봉투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쓰레기봉투가 다 모였을 때 방출된다. 투명비닐봉투는 뭔가 소분해서 넣을 때 쓰임새를 보고 음식이 아닌 뭔가이면 재활용한다. 문제는 들어오는 속도가 나가는 속도보다 빨라서 쌓이기 일쑤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퍼백은 체격이 제법 단단하여 한 번쓰고 버리긴 아깝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비닐을 재활용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는데- 내가 비닐을 재활용하게 된 계기는 비닐이 종이의 과소비를 방지하기위해 탄생된 제품이라는 일화를 접하고부터다.

비닐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종이봉투에 물건을 보관하고 들고 다녔는데, 그로인해 나무 소비량이 많아 벌목이 무시무시했다. 이에 1959년 스웨덴의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1914~2006)이 처음으로 비닐봉지를 고안해 종이봉투의 대체품으로 만들어 썼다. 그런데 초기 목적과 달리 비닐의 공급이 많아지자 비닐을 1회용으로 쓰고 버리면서 또 다른 환경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비닐을 굳이 1회만 쓰고 버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지금은 최대한 안 쓰지만 쓴다면 재활용하고 새것을 쓴다면 최소한으로 쓰자는 원칙이 있다. 지구를 위한 대안이 또 지구를 해하는 방식이 되었다니 씁쓸하다. 물론 과학의 진보로 이에 반하는 또 다른 대안이 나오겠지만....결국 가장 좋은 건 안 쓰거나 적게 쓰는 거다.

이야기가 새어나갔는데, 그래서 우리집 4번째 서랍장에는 중간지대로 머물러있는 다수의 비닐이 있다. 오늘은 그 비닐을 일부는 재활용으로 버리고 일부는 차곡차곡 개어서 정리했다. 약간 궁상맞아 보이지만, 비닐의 역사를 아는 나로썬 그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쓰지 않는 주방의 물건들이 많다. 모든 게 항상 요긴하게 쓰일 순 없겠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소일거리를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내가 그 일을 해줄 수 없다면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 것도 좋고 다른 이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면 용도를 달리하여 산업에너지가 되던지 땅에 묻히는 쓰레기가 되어 어떻게든 자연으로 분해되려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이가 열심히 소꿉놀이를 하다가 엄마에게 선물을 주길래 덥썩 받았다.

"고마워 슈슈도 선물 줄까?"

"괜찮아. 안줘도 돼."

"왜 선물 안줘도 돼?"

"슈슈는 필요 없어서 안 줘도 돼.'

머리가 띵- 했다. 4살 아이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면 받지 않는 현명함이 있는데, 나는 누가 뭘 준다고 하면 뭔가 좋은 건가 싶어서 냅다 받고나서 처치를 곤란해 하는 모습들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필요하지 않다는 말. 그 판단이. 그 거절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이의 단순함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명쾌해지는 것 같다.

아직 나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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