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갱몰드를 버리기까지
꾸준히 집안의 영역을 정리하고 조금씩 비우는 중이다. 오늘은 시제품 양갱몰드를 들고서 서성이다가 쓰레기통으로부터 다섯 발걸음, 가까이에 두 걸음, 가까이에 바로 앞에. 그러다 툭-하고 밀어서 넣어 버렸다. 아- 그냥 쿨하게 툭 버리고 싶었는데...현실은 이렇게 아장아장 걸음마를 겨우 걷는다.
나는 어떤 과업을 수행할 때, 프로세스의 기록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다. 레퍼런스와 아카이브가 중요한 디자인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집착과 미련이 강한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수행한 일의 기록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보관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결과물들이 애물단지같이 여겨질 때도 있다. 왜냐면 용도로서의 쓸모는 크게 없이 자리는 차지하기 때문이다. 쓸모가 다한(시제품을 제작했으므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과정의 잔재를 계속 끌어안고 있어야 할까? 유형의 물건이 사라지면 덩달아 무형의 마음도 떠나가 버리는 것 아닐까? 나는 이 마음이 떠나는 게 아쉬운 걸까? 아쉽다면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건가? 성공이란 결과를 마주한다면 나는 내가 밟았던 디딤돌을 모두 치울 수 있을까? 오히려 성공했기 때문에 더 박물관처럼 기념하지 않을까? 실패한 흔적조차 아쉬운 나는 도대체 뭘까?
2017년에 호기롭게 창업을 했다. 좀 쌩뚱맞을지 모르지만 ‘양갱’가게를 열었다. 내가 양갱을 특별히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오빠가 좋아했다. 오빠는 신기하게도 초콜렛보다 팥양갱을 더 좋아했다. 요즘말로 할매입맛이라는 그 입맛이 우리 오빠였다. 오빠는 20대 시절에 대부분 시험공부를 하며 지냈는데, 시험을 칠 때마다 오빠에게 합격엿이나 초콜렛을 주는 대신에 양갱을 주었다. 제과점에서 번듯한 양갱을 사주기엔 돈이 너무 없어서 방산시장에서 재료만 사가지곤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지 언 5년 쯤 지나자 오빠가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자연히 5년간의 내공으로 나의 양갱제작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오빠는 취업을 했고, 나는 갑자기 양갱을 팔겠다며 양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갱덕질이 시작되었고 뭐하나 꽂히면 사건 하나는 지르고 마는 성미 덕분에 일본도 가보고 창업도 해봤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호시절이었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창업은 호기심만으로 밀어 부칠 건 아니다. 일단 득실을 비교하고 상상력을 좀 발휘 한 다음에 해보길 권한다.)
쓰레기통 앞으로 가기까지 양갱몰드를 들고 여러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궁금한 일이 있어서 시도해봤고 그게 실패했음을 결론지었는데도, 왜 나는 이 흔적을 지우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 나는 아직도 내가 마음을 쏟은 일의 흔적을 지우는 게 힘들다.
그래서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다시 보관하기로 했다.(앞편의 비닐봉지 보관이 생각난다. 반반전략은 나의 습관인가?) 아직은 ‘마음이 여기까지’인가보다. 사실 이 양갱몰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3D프린트 교육을 수강하고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몰드제작을 배웠고 음식연구가의 멘토링을 받아 창업까지 연계시켰으니- 일 벌리는 건 참 쉽다.(하겠다고하면 의외로 도와주는 사람 많다. 뭐든 하고자 할 때는 떠벌리자!) 하지만 개인사정으로 사업을 종료하고 그걸 수습하는 데만 지금 3년째다. 일을 수습하는 건 참 어렵다.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마칠 때도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무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화장실뿐 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아름다운 법이다.
일을 용기 있게 마치는 건 어떤 걸까? 일단 끝을 인정하는 거다. 인연이 다했음을 그리하여 애정의 펌프질을 멈추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거다. 끝을 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끝이라는 어감이 주는 단절과 아쉬움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용기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은 일에 계속 애정을 주게 되고- 그럼 애정의 질은 떨어지면서 다른 중요한 일에 애정이 덜 간다. 부지불식 끝나지 않은 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일을 마무리짓고자하는 욕망은 효율성이 추구하는 욕구다. 유한한 인생에 최대한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싶은 그런 효율적 욕구가 아닐까.
기록가를 꿈꾸지만 기록물을 감당하기는 힘든 한 가정의 주부는 생각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내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이것도 반복하다보면 실력이 늘거라 기대하면서 오늘도 물건 하나를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