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상실

당신의 회피동기는 무엇인가요?

by 속눈썹

전차부대. 나의 별명이다. 타로점을 본 뒤에 글쓰기 모임 동지인 기타키드님이 붙여준 별명인데 종종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열망하는데 익숙해서 싫어하는 것을 떠올리고 얼마나 회피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전차는 그저 목적지를 향해 돌진할 뿐.


최근에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라는 심리학용어를 알게 되었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접근동기가 강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회피동기를 건드리면 곧장 불안해져서 오히려 포기하거나 퇴행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타고나길 심장이 약하고 겁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회피동기는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행위 하는 동기이다. 내가 재미와 즐거움의 감정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감정은 뭘까? 아마도 상실인 것 같다. 불안도 있지만, 이 불안을 야기하는 감정이 곧 상실이다. 상실할까봐 불안하고 상실해서 슬프고 상실을 후회한다.


비움과 상실은 언뜻 보면 사라진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주체자의 의지가 개입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이 나온다. 비움은 홀가분할 수 있지만 상실은 망연자실하다. 어쩌면 나는 이 비움과 상실을 혼동해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내게 청소도 비움도 모두 상실에 대한 도전이자 용기다. 그런데 만약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2018년은 펫로스로 너무도 힘든 해였다. 아끼던 고양이 옹이를 잃어버리고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 무서울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로는 어떤 선택이 지혜롭고 현명한지 알겠는데 도저히 마음이 그 선택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숨 쉬는 것부터 자고 먹고 걷는 모든 행위가 죄책감에 휩싸이고 내가 멋대로 데려와서 내가 멋대로 방임하고 한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스스로가 미친듯이 미웠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게 혐오스러웠다. 자기에 대한 미움이 극대화되자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옥죄었고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도망침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여러 번했다. 그런 우울한 시간 가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몸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내 몸은 더 이상 나 하나가 아니었다. 정말 최악의 태교를 했지만, 나는 내가 죽지 않는 게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고 마음을 추슬러갔다. 그래서 요즘도 아이가 까탈스럽게 굴거나 짜증을 내면 혹여 태교를 못해서 그런지 미안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에도 아이는 태어났다고 하니, 급변하는 사회에 태교를 못한 게 나만은 아닐 거란 소심한 위로를 해본다.) 각설하고 이렇듯 나는 상실의 경험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옹이가 떠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느 이별처럼 옹이는 불쑥 떠올라서 가슴을 아프게 후벼파다가 다시 가라앉고 또 떠오르길 반복한다. 다행인 것은 여느 이별처럼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간격은 벌어진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땐, 신과 인연을 믿기도 한다. 신의 뜻이었다거나 나와 인연이 다했다는 건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바라보는 현명한 시각이기도하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고 옹이의 영혼이 편안하길 빌어주는 것 외에는.


세상 어느 분야가 그렇겠지만 알게 되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옹이를 통해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 나는 동물복지와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차라리 몰랐으면 무지해서 행복했을 그 열악한 세계를.


의도치 않게 잃어버리는 상실은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은 그 빈자리의 가치를 크게 느끼도록 해준다. 내게 옹이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나는 잃고 나서 오열하면서 알았다. 상실과 비움은 닮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닮았다. 상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즉 비자발적인 박탈의 상황이고, 비움은 온전히 자발적인 능동적 행위다. 맞다.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무소유>에서 법정스님은 뭐든 갖게 되면 집착이 되니 일상의 타성이 되기 전에 의도적으로 비우길 권하셨다. 스님의 말씀처럼 뭔가를 비운다는 게 그토록 싫어하는 상실로부터의 자유를 준다면 어떨까? 자유-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다.


아이의 하원시간이 다가오는 지금 같은 시간엔 특히나.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한다.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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