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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정리를 하다보니 옷은 대체로 적은데 생각보다 양말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양말들이 전부 취향 없이 선물 받거나 얻은거란 사실에 살짝 시부룩해 졌다가 발목에 작은 딸기가 그려진 양말 하나를 극적으로 찾았다. 그건 우연히 들른 대전시장에서 거대한 양말가게를 보고 흥분해서 샀던 1000원짜리 양말이었는데, 발목양말이 유행해서 별로 신고 다닌 기억은 없지만 (그러고보니 발목이 없는 양말을 왜 발목양말이라 부르지?) 그래도 내게 양말 취향이란 게 있다는게 나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대게는 내가 고른 옷이 내 취향에 제일 잘 맞다. 그런데 내가 고른 옷이 몇 개 없다. 나는 일은 막지르지만 소비는 막하지 않으므로 심사숙고 '이건 사야해!'가 되기 전까지 고르고 또 고른다. 연애시절엔 이런 깐깐함에 질려서 남편이 막 사주기도 했는데- 옷을 사주고도 연인이 기뻐하는 기색이 없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나. 아직 시어머니는 이런 깐깐함에 질리지 않으셨는지 만날때마다 옷사러 가자고 성화시다. 옷가게에 가서 내가 이것저것 싫다고 한걸 보자 옷가게주인에게 민망했는지 이제는 본인이 사서 주시기도 하는데- 그런 옷들이 집에 많다. 그래서 웬만하면 집에 있는 옷이 시어머니 취향인 것 같다. 물론 시어머니는 내가 즐겨입는 색깔과 스타일을 고려해서 골라주시지만...하하하. 어머니 전 돈이 더 좋아요.
내가 즐겨 입는 외투를 골라보니 3개다.
1. 카키색 야상
나는 야상이 너무 좋다. 야상을 입고 다니면 아빠가 거지나부랭이 같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왠지 활동적인 사람으로 빙의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옹이도 나의 야상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래서 쉬야를 하기도 ㅠㅠ 그러나 세탁소에 사정사정해서 맡기고는 아직도 입는다. 야상은 왠지 오래입으면 입을수록 더 빈티지하게 간지난다.
2. 브라운 코트
자라에서 싸게 산 코트인데 의외로 오래 입고 있다. 회색이나 검은색 코트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 나고 내 머리색이 옅은편이다보니 따뜻한 계열의 브라운컬러가 스스로 잘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름 공식적인자리나 차려입고 싶을 때는 코트를 입는데, 코트를 입으면 나도 모르게 약간 기분좋은 긴장이 되서 좋다.
3. 하얀 가디건
이건 임신하고나서 임부복을 찾다가 산건데 출산 후에도 지속적으로 입는다. 심지어 단추도 없이 그냥 걸치는 가디건인데도 편하다. 세탁이 좀 번거로운것만 빼면 환절기에 입고 다니기 넘 편하고, 가디건이 주는 전체적 인상처럼 사람이 편안해진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싶을 때, 이 가디건을 꺼내서 입어본다.
옷의 느낌은 다른데, 컬러는 대체로 내추럴스타일이다. 가장 좋아하는 게 야상인 걸로 보아 나는 활동성을 가장 중시하는 것 같다. 최근 남편이 근무복으로 옷을 사라고해서 검은 트레이닝 바지과 아이보리치마를 샀는데, 진짜 집에선 트레이닝바지만, 외출하면 아이보리치마만 입어서 남편이 언제 퇴근하냐고 놀린적이 있다. 근무복이라고 하니 코디할 필요 없이 그냥 입으면 그만이란 생각에 어찌나 편리하던지. 상의만 가끔 기분 내키는 걸로 바꾸면 되니까- 옷 입는 고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시대라 집에 있는 게 일상이다보니...(아 언제쯤 카페오피스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옷을 더 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씩 기분 전환을 위해 노랑, 빨강, 주황 옷들이 대기하고 있는데....어쩌면 영원히 이런 원색계열의 옷을 안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0대란 원색을 포기하는 나이인가. 이런 발랄한 색상이 유독 더 싱그러워보였던 날도 있는데, 난 이제 빨간색에 손이 안간다. ㅋㅋㅋㅋ(그럼에도 빨간구두는 두켤레나 있는 것 무엇) 미니스커트도 이제 안입겠지.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고 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는 왜 미니스커트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30대 징후인가. 아니면 애엄마 징후인가.
그러고보니 언제부터 예쁜 옷을 입는 것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옷이 날개란 말은 옷가게에 가면 수없이도 듣지만, 정작 그 예쁜 옷은 언제 입어도 그만이란 생각에 별로 탐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자식이 옷을 번듯하고 예쁘게 입고 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는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님 생각해서 옷입는거 아니라며 막 입고 다닌다. 패션계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면 업종 말아먹는 파렴치한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옷이 나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 수단은 옷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꼬꼬마시절 옷을 사주는 법이 없었던 엄마 밑에서 쇼윈도에 전시된 아동복 코너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저 옷만 입으면 예뻐질 수 있을텐데. 그런 상상을 많이 했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 경험한만큼 큰다고 청소년이 될때까지 쇼윈도에 전시된 아동복을 입는 일은 없었기에 내가 옷이 주는 기쁨을 모르고 큰건지도 모르겠다. 열망은 식기 마련이고, 식어버린 열망은 다른 열망을 찾아 정착한다.
나는 옷에 무심해서 취향과 다른 옷도 잘만 받아드리면서 진짜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가 있을까. 둘러보니 가장 취향 저격한 책들로만 이루어진 책장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책장에는 저렇게 선별에 선별을 거듭하여 살아남은 책만 놓으면서 옷은 왜 이렇게 막 쌓아 두었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