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정리방법은 모르지만

스스로 구하는 길에 반드시 있어

by 속눈썹

평소 나의 고질적인 어떤 면을 설명할 때면 엄마의 양육방식 때문이라고 핑계를 들곤 했는데, 내 글을 즐겨보던 이웃분께서 어느 날은 <양육가설>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셨다. 아마도 내가 엄마라는 가림막을 만들고 수많은 핑계를 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 취지인 것 같은데, 그 의도는 너무 고맙지만 솔직히 그런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아직도 못 읽었다. 언젠가 마음이 좀 단단해지면 책을 건드려봐야겠다 생각하면서 나는 여전히 엄마핑계를 고수하고 있다. 뭘 못하고 안하는 건 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워서라고 말하면- 솔직히 편하니까. 엄마는 우리집의 검은양이 되어 가족들의 숱한 핑계받이가 된다는 걸 알지만 멈추지 못한다. 그만큼 엄마는 편하고 뭐든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 됐다. 우리집 엄마만 그런 걸까. 여느 집 엄마도 가족들의 성장에 혁혁한 공을 세우거나 혹은 몰락의 좋은 핑계가 되어 주는 걸까.

어쩌다보니 나도 엄마가 되었는데, 나의 영향력을 그렇게 크게 평가한 적 없으면서 나의 엄마에게는 그렇게 많은 걸 기대했다는 게 부끄럽다. 하지만 그 당시에 엄마가 너무나 커보였던 건 사실이다. 그런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 아이의 마음이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내 남편은 나의 이런 심리상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입을 다문다. 자신이 느끼고 이해한 걸 팩트로 날리면 그대로 주먹이 날아온다는 걸 느낌상 아는 현명한 남자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탓을 하는 어리광 만점의 철없는 부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직언할 수 없어서 같이 살 수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인데, 나는 내 행동에서 엄마를 마주하고 때론 혐오하고 때론 당황한다. 엄마가 내 삶에 개입되는 게 미친듯이 싫으면서 내 삶의 안 풀리는 부분이 있으면 엄마를 집어넣어 풀어버린다. 엄마를 생각하면 애잔하고 화가 나면서 억울하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 엄마와 초연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지만- 그것조차 직시하지 않으면 아무런 개선이 없을 것 같아서, 엄마를 떠올리고 감정을 써본다.

나는 내 아이가 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애잔하고 먹먹하고 화가 났다가 슬펐다가 기쁜일이 뒤죽박죽 생각나는 복잡한 기분이 아니라 부모를 생각하면 어릴적에 많이 사랑받고 풍족하고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는 뒷배가 되었던 최소한의 그림자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 부모를 떠올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걸 먼저 떠올리고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고 자유롭게 실패하고 자유롭게 모험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나의 부모가 고맙고 안쓰럽고 원망스러운데- 만약 그들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놓고 매달릴게 눈에 뻔히 보인다. 나의 부모가 그들의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것도 몇 날이 안 남았다는 예감이 들고, 그 안에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안정적인 태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건 집이 어지러워서만은 아니다. 사실은 관계. 그것도 고질적인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꿈. 꺼지지 않는 꿈을 향한 집착. 후회. 자꾸만 지난날을 회상하며 돌아가고 싶다는 망상을 품는 버릇. 죄책감. 내가 누군가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도 버젓하게 멀쩡하다는 죄책감 등등. 복잡한 감정들은 건드리면 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기껏 할 수 있는 외관이라도 정리하고 싶다. 그냥 외관이라도 정리되면 내 내면도 좀 안정될까 싶어서.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은 모른다. 전혀.

25살에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아카데미에서 하는 웹소설 아카데미의 면접을 간 적이 있는데, 한 번도 10장 넘는 글을 써본적 없는 나를 두고 심사위원들이 고민에 빠진 걸 알 수 있었다. 하루에 10장 이상 글을 쓰는 어려운 작업을 한 번도 10장 넘는 글을 써 본적 없는 사람이 3개월 간 트레이닝 하는 데 문제가 없겠냐고.

"하루에 10장 이상 3개월 간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럼 할 수 있어요. 저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거지. 알려주시면 그대로 하는 건 잘해요."

그리고는 아카데미에서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무사히 웹소설 수업을 수료할 수 있었다.(그 때, 웹소설시장이 이렇게 커질 거란 선생님들의 말을 믿고 열심히 했어야 돈방석에 앉았을텐데 ㅋㅋㅋㅋ) 아무튼 그 때 이후로 방법을 모른다는 말은 방법을 만나면 폭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방법은 잘 모르지만- 스스로 구하다보면, 언젠가 이 복잡한 마음도 정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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