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중요한 건 미니멀라이프가 아니야

by 속눈썹

곧 명절이라 친구들이 고향으로 내려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와 철학적이다. 난 거기까지 생각 안 해봤는데.'하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 말이 다소 민망하면서도 의아하다. 다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왜?어떻게?무엇을?그렇다면?그래서?그럼에도? 따위의 질문을 하면서 사는 것 아니었나?


"너는 그럼 계속 이어지는 질문은 안 해?"

"응.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답이 안 나오는 건 생각 안 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생각하다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잖아. 한 1년 안에라도."

"그런데 신경을 빼앗기면 정작 해야 할 일에 힘을 못 받아서. 우선순위를 먼저 생각하지."

"우선순위...너 엄청 이성적이다. 그게 된단 말이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는 서로 너무 다른 사고방식에 놀랐다. 나는 우선순위가 조정이 안 되고 의식의 흐름에 노예처럼 끌려 다닌다면 친구는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고 일단 중요하고 급한 일 이외에 생각과 일은 차단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친구의 단호한 면이 부럽다. 내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을 확장시키는데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도 좋지만, 때론 이런 성향이 제어가 안 되서 아무것도 수렴하지 못하고 확장된 가지로 끝날 때는 허무하다. 게다가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다른 잔가지를 뻗느라 중요한 일을 외면할 때는 더욱이- (그런데 그럴 때 더 기발하고 재밌는 생각이 나는 게 신기하다.) 사유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우선순위의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말은 자기계발서에서나 읽는 말인 줄 알았는데, 가까운 친구가 실제로 그렇게 생활한다고 하니 신기하기 따름이다. (자기계발서는 많이 읽었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이 못 봐서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우선순위의 몇 위 정도로 두고 있는 걸까?


사실 미니멀라이프를 꿈꾼 역사는 오래되지만- 본격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폐업 직후였던 것 같다. 폐업 물품을 처리하는 과제가 있었지만- 당시 나는 상실의 슬픔에 빠져 모든 일상이 마비 상태였고 그대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은 극한상황이어서 폐업물품처리의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어느 정도 키워서 어린이집에 보내자 미니멀라이프가 우선과제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때부터 결심을 밥 먹듯이 하지만 또 잦은 코로나상황과 여전히 틈이 안 나는 2020년을 보내면서 나는 위기감을 심하게 느끼고 변화를 꿰한다. 그게 미니멀라이프에서 정리정돈으로 목표를 한 단계 격하하는 것이었다. 2021년에 새로운 정리커뮤니티에 가입하면서 '함께'의 힘을 받아 정리정돈을 20일 가량 도전하고 돌이켜보니- 나는 이 우선순위를 하루의 첫 번째로 행동했다. 덩달아 글쓰기도 부가적으로 했는데(글쓰기는 2순위였다.) 글쓰기는 거의 정리정돈의 보상 같이 미니멀라이프 소재의 글만 쓰도록 하여서 내가 좀 더 정리정돈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스스로 독려했다. 이 역시 미니멀라이프를 어떻게든 실천하려는 큰 그림의 하나다. 물론 놓아주어야 할 물건을 바라볼 때 갑자기 밀려오는 의식의 흐름에 예술가나 사업가가 되는 것도 있긴했다. 몹쓸 확장성 ㅋㅋㅋ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미니멀라이프는 나의 라이프가 홀가분해지길 바라서 실천하는 일이지 그 일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미니멀해서 홀가분이 아니라 텅 빈 허전함을 느낀다면 그건 올바른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홀가분해지는 상황이 꼭 미니멀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버려야겠다. 오히려 충만할 때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도 있을 것이다. 가령 돈이라던가 ㅋㅋㅋ


수단으로서의 미니멀라이프를 인지하고 내 삶의 진짜 우선순위를 재고해봐야겠다. 그래도 1월 한 달은 미뤄왔던 정리정돈을 실천하겠다고 진짜로 행동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박수쳐주고 싶다. 앞으로도 실천하고 행동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먼저 하겠다고 선언해본다.


내 인생은 미니멀라이프보다 중요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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