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함을 극복하려면

선택 그리고 유희열

by 속눈썹

요즘은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하고자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던 일이 지루하거나 어려워지면 금방 다른 일로 손이 뻗는다. 그래서 만약에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밖에 없다면 지루하거나 어렵더라도 대안이 없으니 그냥 그 일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금술사> 첫 장에는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느라 시중을 들지 않는 마리아를 두고, 마리아가 가장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했다. 결국 번잡하게 모두 고루 잘해보고 싶다는 것도 나의 선택일 뿐이다. 나는 한 가지만 선택할 만큼 강단있지 못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역할만 집중해도 당연한 시기다. 아이가 어리고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는 엄마로서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엄마 역할을 어설프게 하면서, 다른 일을 꾀한다. 그건 그냥 융통성인 것 같다. 한 가지를 매달리든 두 가지를 매달리든 감당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족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인 동시에 변화를 추구하는 일을 꾀한다.


그런데 변화를 생각하면 나는 꾀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지치기처럼 변화를 꾀하는 일의 가지가 창작, 살림, 언어, 경제, 문화, 운동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뭐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은 많은 구슬들 보자니 하나도 꿰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다. 이 구슬이 미끄러져 갈 것 같으면 다른 구슬을 드는 건 쉽지만 것도 실에 영 잘 꿰어지지 않는다. 언제쯤 이 구슬을 능숙하게 꿰어 매듭을 지을 수 있을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냥 내가 구슬의 갯 수를 줄인다면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저 구슬도 예쁘고 저 구슬도 귀한데 어느 구슬만 선택해서 꿴단 말인가.


지금의 기분은 그렇다. 마치 내 아이처럼, 고사리 손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보려는데 소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자꾸만 놓치기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나는 이 구슬을 꿰면 보배가 될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이 구슬을 꿰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가 너무 지난하게 상상된다. 그래서 자꾸만 자리를 이탈하는 것 같다. 어느 작가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책상에 몸을 묶고 글을 썼다는 말처럼-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이겨야 하는 저항은 인간의 의지로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하물며 그런 욕망을 여러 구슬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가져야 하는 걸까.


아이가 반복적으로 퍼즐에 실패할 때, 나는 피스가 가장 적은 퍼즐을 내민다. 이것부터 해 봐. 끈기와 인내심을 배우는 단계인 아이에게 많은 구슬보다 하나의 구슬을 끼우는 것이 현명한 목표다.


내가 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훌륭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당장 하나도 꾸준하게 실천하기 어렵다면, 시급하고 좋은 기회들은 모두 제쳐두고 나만의 속도로 여전히 어려운 실천 하나를 계속 해보는 건 어떨까. 중요한 다른 가치들은 하나의 구슬을 꿰고 나서 꾀하면 된다.

얼마 전에 젝키가 음반을 준비하는 내용의 <십오야>영상을 보았는데 (젝키팬이었으나 강성훈이 망가져서 슬픈 1인ㅜ) 유희열이 디렉팅하는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았다. 예능을 보면 까르르깔깔 웃다가도 섬찟하고 소름이 돋을 때가 있는데- 이게 한국예능이 가진 강점이 아닌가 싶다. 폐부를 찌르는 진실 혹은 진리를 마구 웃다가 훅 던진다는 거.


그 날은 음원 녹음을 위해 유희열이 열심히 디렉팅 중이었는데,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진행하자니 젝키멤버들이 그 게 힘들었는지 혹은 유희열이 안쓰러웠는지 자꾸만 쉬었다가 하라고 권한다. 이재진이 반복해서 그런 말을 하자 유희열이 정색하고 하는 말


"난 원래 이렇게 해."


막 웃다가 그 말이 어찌나 뼈를 때리는지 십오야를 본지 오래 지났는데도, 한 동안 계속 생각났다. 끝을 볼 때까지 한 자리에서 계속 일어나지 않고 지시하고 판단하고 또 다시 하는 모습에 새삼 유희열이 뮤지션이었음이 감동적으로 느꼈다. 명곡을 낸 아티스트에겐 뭔가 다른 게 있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 거다. 난 저렇게 한 자리에서 외부의 방해를 무시하고 줄곧 이어갔던 게 언제던가- 늘 상 아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긴하지만, 그래도 내게 많이 부족한 능력이다.


사람들은 흐름을 타는 순간을 자각할까? 나는 책을 보다가 너무 흥미롭거나 재미있으면, 단숨에 읽는 게 아니라 자꾸만 책을 덮고 다른 생각을 한다. 그 다른 생각이란 '이거 너무 재밌다!' '작가가 어떤 사람이지?' 혹은 '다른 아이디어가 퐁퐁 생각나!' 이런 종류의 내용과 상관없는 생각이 끼어든다. 그렇게 좀 다른 생각을 실컷 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 책을 다시 읽는다. 그래서 내게 진짜 잘 읽히는 책이란- 어쩌면 최상이 아니라 상의 책이다. 이는 작업할 때도 비슷한 양상이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면 혹은 스케치하면 일단 멈춘다. 너무 잘되는 게 이상해~하면서. 생뚱맞게도 마음을 차분히 시키는 다른 행동을 하는데- 왠지 흐름에 완전히 맡겨버리는 행위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레저와 가무에 쥐약인 것인가 ㄷㄷㄷ)


나의 특징이 흐름을 곧잘 분절해서 사유하고 재정비하는 거라면 유희열은 흐름을 타면 끝까지 가는 건데, 아- 역시 못 가진 떡이 너무 커 보인다. 나도 저런 집중력 갖고 싶다. 진짜 제발 ㅋㅋㅋㅋ 법륜스님은 기도를 할 때, 바라지 말라고 하던데. 나 원래 이렇게 해. 라고 외부의 방해를 쳐내는 강한 집중력이 부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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