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다
간소화하고 싶다는 욕구는 아마도 내가 복잡하기 때문일까? 혹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진짜 견딜 수 없다면 난 무너졌겠지. 견딜 수 있지만 견디고 싶지 않은 무거움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그토록 복잡하게 여기는 걸까? 아니 왜 가벼워지고 싶은 걸까?
얼마 전에 설민석 강사의 지식예능을 꼬집는 비평 글을 읽었다. 설민석은 여러 논란을 안고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만, 전에도 이렇게 몰락한 스타강사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 사실 미디어생태계가 스타강사의 지식검증을 거치고 송출할 만큼 탄탄하지 않다. 작가진이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를 모셔놓고 전문가를 채용하여 전문가의 지식을 검증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하다해도, 지금 콘텐츠소비 속도와 제작비용측면에서 볼 때 방송사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방안은 아니다. 그래서 우려하던 일이 터진 게 설민석 방송하차다. 설민석은 지식을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다양한 사고와 해석이 가능한 인문, 철학, 역사를 이해하기 '쉽다'는 말로 마케팅하는 자체에 오류가 나올수밖에 없었다. '쉽다','간결하다','함축적이다'는 표현은 여러 가지 가능성, 사유의 잔가지를 모두 쳐버리는 행위다보니 시청자들은 조금씩 불만이 올라왔다. 게다가 방송의 파급력은 전국방방곡곡 묻혀있던 전공자들의 지식을 일깨웠으니- 결국 논란이 생기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것은 가치 있다. 하지만 쉽게 하는 것을 너무 찬양하다보면 '노력'하는 사람이 바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인문, 역사, 철학은 사유를 많이 요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쉽게 요약해서 강독을 들려주면, 독자들이 이해했기 때문에 그걸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적어도 강사의 시야 안에서 이해하는 건 성공하겠지만, 그 이상 혹은 다른 시야는 더 공부해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콤팩트한 강의를 한 편 듣고 나서 더 공부할지, 안다고 만족할지는 너무 개인적인 문제이다 보니- 논란이 된다. 설민석은 마중물의 역할로 이런'역사'도 있다는 걸 쉽게 전달해주고 싶었겠지만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오류, 범주화, 일반화에 대해서까지 고민하진 못한 게 아닐까. 말이 길었는데 이러이러해서 나는 어려운 일을 어렵게 하는 것도 가치 있다고 본다. 내게 그 어려운 일이 뭐냐 하면, 바로 '미니멀라이프' .애초 태어날 때의 그 빈 몸,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이 미니멀라이프의 꿈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진척은 있을지언정 만족은 없었다. 비우고 비워도 회귀와 회귀를 거듭하는 것이 이 물건들은 연어떼가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기도 하고, 자가 증식하는 암세포 같다는 경멸도 하다가 이 모든 것이 나의 추억이자 역사라는 의미부여까지. 정신승리는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버리니 홀가분하다는 후기를 읽을 때마다 부러우면서도 공감되지 않아서 (실제로 비우고 나서 자꾸만 생각나 앓아누웠던 1인) 나의 이 집착과 미련의 근원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 물욕이 강한 편은 아니다. 물건에 욕심이 있다면, 타고난 허세로 말미암아 얼리어답터가 되고픈 욕망은 있지만, 금전적 문제로 포기한지 오래다. 그러니 '호기심'을 제외하고 나는 물건에 큰 욕심이 없다. 그런데 한 번 들어온 물건을 내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왜냐면 그 물건들이 쓰임을 못하고 버려지거나 구차한 물건으로 취급받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안 좋다. 그러느니 차라리 갖고 있다가 좋은 쓰임이 생길 때 적절하게 찾아주고픈 마음이 일조한다. 그렇다. 나는 내 눈으로 재활용되는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재활용률이 2~30% 남짓이라는데 대부분 쓰레기로 전락하여 그냥 소각되어 버리는 게 너무 허탈하다. 하나의 생물로 태어나 지구에 이로운 나무 한그루 못 심을망정 이렇게 쓰레기만 생산해내는 건 비참하다. 그렇다. 정말 뚱딴지같지만, 버리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버리는 순간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자기비판이 너무 싫다. 내가 쓰지 않는 것을 남이 써주면 고맙다. 그 물건이 쓸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죄책감도 던다. 헌데 <자기 앞의 생>의 12살 모모가 강아지를 비싼 값에 파는 이유처럼 내가 무료 나눔이나 헐값에 내놓은 물건은 그만큼 하찮게 대해지다가 어느새 팽겨쳐질까봐 겁이 난다.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기에- 그래서 나는 최소한 재화를 들인다면 구매한 사람이 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돈이 생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원가를 생각한다면, 분명 돈 때문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말- 들어보니 복잡하지 않은가? 어느 책모임에서 내가 버리기를 주저하는 이유를 이렇게 구구절절 말했더니 듣고 있던 멤버는 쿨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냥 버려."
정말 깔끔하게 아웃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 말이 꽤나 섭섭했다. 나는- 지금까지 버리는 게 안 되었던 사람이다. 목적은 비우는 거지 버리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사정을 듣고도 "그냥 버려."라고 조언한다. 정말 나는 그게 필요한 걸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버리지 않아서 내가 혼란스러운 게 나을지, 버림으로서 지구에 쓰레기를 던져주는 행위가 더 나을지. 그냥 잘 모를 땐, 답을 찾을 때까지 물러서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잡동사니들을 당장 버리진 못한 채 모아 둔다. 분명 고민하다보면 좋은 방향으로 결정이 나리라 믿으며.
나는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연민이 많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쓰임을 다하고 떠나는 물건이 죽는 것만 같아서, 생생한 물건을 버려야 할 때면 작은 아이를 내 손으로 안락사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런 깊은 감정이입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다소 궁상맞아 보일정도로 가방 안에는 '더 이상 물건을 살 수 없게끔 준비한 물건'이 가득하고 그래서 늘 가방이 무겁다. 이게 어떤 심리적 병증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이럴 때보면 또 자기 편한대로 잘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지척에 널렸지만, 가끔은 이해를 포기하고 묵묵히 옆에 있어주기를 택한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지만 인내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나를 이해할 것만 같은 복잡한 심리의 주인공이 있는 책을 만나면 그렇게 기쁘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 내가 갖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자 도전이다. 내가 극복하지 못한 '상실'에 대한 강한 연민의 감정이 ‘미니멀라이프 도전기’라는 노력을 통해 어떻게 변화될지 나 역시도 무척 궁금하다.